그 어머니에 그 아들의 재발견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의 재발견
  • 김종하 전북향토문화연구회원
  • 승인 2020.09.0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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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16일 이 시대의 장한 어머니상(像)인 고 문순임(文順任)여사께서 향년 100세로 고부 장문리 향리자택에서 영면하셨다. 큰 자부님이 전하는 말에 어머님은 생전에 병원에 입원한번 하신 적이 없으신 강건하신 생활을 영유하셨다고 한다.

  고 문 여사님께서는 일찍이 1921년 전남 장성군 북일면 성덕리에서 출생하셨고, 1939년에 부군인 김숙봉씨와 성혼하여 7남매(4남3녀)의 다복한 가정을 이뤘다고 한다.

  고 문 여사님께서는 살아오신 생전에 어려운 애환을 이기시고 남다른 화목한 가정을 이루시면서 자녀들 교육에 헌신하여 당시 농촌의 어려운 생활환경에서도 7남매라는 적지 않은 자녀들을 모두 고등교육을 시켰으며, 그들 자녀들이 오늘날 사회의 일선에서 중추적인 인재로써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 문 여사는 평소 남다르신 영재교육에도 관심이 크셨기에 고부초등학교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 지역의 인재육성을 위한 영재교육에 써달라는 뜻으로 금 100만원을 쾌척하셨고, 또한 평소에 애향심이 많아 매년 마을행사에는 많은 금품을 후원도 하고, 명절 때 마다 마을 어른들에게 선물을 보내는 등 평소 장한 어머니 상으로 살아 오셨기에 마을에서는 자비로운 어머니로 칭해 왔다.

  정읍시에서는 이와 같이 평생을 올 곧은 선행으로 살아오신 고 문 여사님을 생전에 시민들의 뜻을 모아 2006년도 장한 어머니로 추대되어 정읍시(시장 강광)로부터 큰상을 받으셨고, 아울러 2019년 2월에는 정읍시(시장 유진섭)로부터 기네스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장남인 김정일(82)은 일찍이 초·중고등학교을 거쳐 중앙대학교 법정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전공하였고 사회에서는 국가정보통신부처에 다년간 봉직하여 서기관으로 퇴임하였다.

  한편 김정일은 중앙대학교 재학중(3년) 1960년 4.19학생혁명(의거) 당시에는 ‘의에 죽고 참에 살자’라는 모교의 정신(교훈)을 이어받아 분연히 의거에 참여했고, 의거(義擧)중에 산화한 동료 선후배 학우들 중 김태년 군과 서현무양 양은 훗날 김정일씨의 주선으로 양가 어른들 허혼(許婚)으로 영혼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오늘날 반세기가 지난 세월이었음에도 그들의 얼과 정신을 선양하여 후세에 기리기 위한 일환으로 이루어진 ‘4.19혁명기념 사업회’의 회장으로 재임했고, 또한 ‘중앙대학교 총동문회’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4.19혁명에서 산화한 모교 고병래군 등 6명에 대한 명예를 회복하고 그 참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 들이 자랐던 전국 시골고향을 직접 방문하여 고향인사들을 찾아 그들의 지난날 참 정신을 전하면서 의로운 정신을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도록 격려 해왔음은 당시 의거에 참여했던 한 사람으로써 이 자리를 빌러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역시 그 훌륭하신 어머니 고 문 여사님에 그 아들로서 국가사회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여겨 필자는 본란에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의 재발견’ 제재를 다르고 이 두 분의 걸어온 길이 사회의 귀감이 되었으면 바람이며 끝으로 고 문순임 여사의 영전에 삼가 왕생극락하심을 부처님께 발원하는 바입니다.

 김종하 <전북향토문화연구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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