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어찌할꼬!
이를 어찌할꼬!
  • 최재용 전북도 농림수산식품국장
  • 승인 2020.08.3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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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기상관측이래 두 번째로 긴 장마가 이어졌다. 장마가 끝나갈 무렵에는 국지적이고 불규칙한 폭우까지 쏟아져 전국이 물난리까지 겪었다. 도로와 골짜기는 쓸려나갔고, 침수로 주택과 비닐하우스는 엉망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인삼, 콩 등 농작물들은 자취를 감추거나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또 긴 장마와 폭우로 예년에 비해 농산물 가격이 올랐다 한다. 마트에서 시장바구니에 과일, 채소 담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실상 농가의 마음은 편치않다. 시장에 낼 농산물이 없어 거래가격만 오르는 것이다. 예년처럼 농산물이 생산되어 이 가격에 팔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속만 상하는 것이다.

 이 와중에 누구의 어려움과 고통이 더 큰가를 가늠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농부의 안타까움과 허망함이 결코 작을 수가 없다.

 주택의 파손이나 허물어진 도로와 같은 시설은 돈만 있다면 그래도 지금 당장 복구를 해가면 될 것이다. 더 많은 장비를 투입하고, 인력을 쓴다면 우리 인간의 힘으로 시간을 앞당겨 조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을 키우는 농사는 인간의 의지로 환경을 극복할 수도 없고, 경제력만으로 불가능하다. 지금 볍씨를 뿌릴 수도 없고, 콩이나 고추를 심어 수확을 기대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첨단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달에도 1년 365일, 시간의 흐름을 조절할 수가 없다. 태양을 한바퀴 도는 지구의 공전과 24절기 계절의 흐름을 늦출 수도, 빨리할 수도 없는 것이다. 지구를 더 빠르게 움직여줄 영화 속 슈퍼맨은 허구인 것이다!

 농부는 인내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 여름이 지나고 가을, 겨울을 지나, 새로 씨앗을 심을 수 있는 봄을. 그래서 답답하고, 망막하고, 허탈한 것이다.

 지난주 필자가 속한 부서에서도 수해 복구현장에 지원을 나갔다. 곳곳에서 덤프트럭, 포크레인 등 중장비 움직이는 소리가 나고, 땡볕 들녘 띄엄띄엄 자원봉사 오신 분들의 때아닌 움직임이 분주했다. 그렇게 우리도 인삼밭 비가림 시설 정리에 뛰어들었다.

 그날 동료 10명과 함께 다섯 시간 넘게 작업했음에도 고작 6백 평 인삼밭을 대충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떠나는데 연신 고맙다는 아저씨의 말씀!

 순간 약간의 뿌듯함도 느껴졌지만 완벽히 마무리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어쩌다 주말에 고향 부모님 찾아뵙고 잠깐 밭일 좀 거들어주고 떠나는 자식의 미안함, 걱정스러움, 마음 불편함이 이런 것이었으리라.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또 농사일이니.

 이번 폭우로 논밭이 물에 잠기면서 벼보다는 밭작물과 하우스 같은 시설들이 더 많은 피해를 봤다. 논에 대체작물로 심은 논콩이 상당 부분 피해를 봤고, 인삼밭도 겉으로 보이는 시설은 멀쩡한데 수년간 심어놓은 인삼이 긴 장마와 함께 물에 잠겨 어 버렸다. 고랭지 특성을 이용해 다른 지역에서 수박 출하가 끝날 때쯤 시장에 내보내려 애써 키웠던 비가림 수박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겨울 딸기를 키워내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던 비닐하우스도 9월에는 새로 정식을 해하는데 물에 잠기고 허물어져 버렸다.

 사정이 이런데 폭염이 계속되는 날씨에 웃돈을 줘도 일할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로 사람들의 움직임이 제약을 받는 상황이 되자 자원봉사를 나가는 것도, 자원봉사자들을 받아들이는 것도 서로 마음이 편치않은 경우까지 생겼다.

 이런 상황이라면 전국 각지의 사람들을 한 곳에 결집하기 보다는, 매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작은 부서 단위로 흩어져 농가 일손돕기에 나서면 어떨까 한다.

 찌그러진 하우스와 더 이상 쓸모없게 된 인삼밭 비가림 시설은 기계장비로는 어려워, 일일이 사람 손으로 분해하고 치워내야 할 판이다. 그런데도 장마와 폭우가 지나기 무섭게 또다시 태풍에 상처를 받고 말았다. 들녘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은 조급해져만 간다. 이를 어찌할고!

 최재용 <전북도 농림수산식품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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