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20) 박구경 시인의 ‘버리려는 냄비를 보다가’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20) 박구경 시인의 ‘버리려는 냄비를 보다가’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0.08.3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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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리려는 냄비를 보다가’

  - 박구경

  

 깊고 추운 겨울밤 홍시가 어는 밤

 쭈그러들고 검누래진 저 냄비 가득

 닭을 삶아

 살아 있던 날개를 삶아

 웅크리고 모여든 여럿의 여고시절 친구들과

 까르르 소주를 마시고 싶다

 다들 천천히 얘기에 얘기로 취해

 아무렇게나 하나씩 쓰러져 잠든 걸 보고 싶다

 나는 비틀비틀 문밖으로 나가

 찬 공기 속에 한 눈빛을 꾸준히 유지하며

 내버려진 10년 아니 30년 간의

 춥고 깊었던 겨울밤을

 잠시의 쇠 난로처럼 활활 만나고 싶다

 

 <해설>  

 나이를 먹다 보면 내버려진 10년, 30년 깊었던 세월, 회한의 시간이 아득하게 보입니다. 민둥산처럼 헐벗었던 젊은 시절. 푸른 절벽 앞에서 헤맸던 날들이 왜 그토록 많았을까요. 젊었기에 그만큼 고민도 많고 깊었을까요? 칼끝처럼 예민했던 젊은 날의 삶도 세월의 흐름 속에서 아득한 추억이 되어 가네요.

 쭈그러들고 검누래진 냄비에 닭을 삶아 웅크리고 앉아 나눠먹던 시절, 그런 친구들과 다시 어울려 까르르 소주를 마시고 싶은 마음. 그늘이 없는 얼굴 맞대고 비밀 이야기를 나누며 밤하늘에 별을 섞어 꿈을 이야기하던 추억. 누구는 웃음을 참지 못해 배를 잡고 눈물을 찔끔거리고, 어떤 이는 목젖이 환히 보이도록 웃어재끼다 서로 이야기의 이야기에 취해 아무렇게나 하나씩 쓰러져 잠들었던 추억을 그리워하네요. 이는 아마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추억이 마냥 먼 전설처럼 아름다울 거예요. 

 허름한 집 창호지의 문을 열고 나와 비틀대며 찬 공기 속에서 한 곳만 응시하다 토할 때까지 울었던 기억. 푸르던 이십대의 계절을 지나 생의 한 가운데를 적시며 어느덧 오십 대에 접어들었네요.

  눈보라 치는 어느 겨울날 잠시 쇠 난로 앞에서 양은 주전자의 뜨거운 물 한잔으로 얼었던 몸과 마음을 녹이다 보면 지난날 젊은 시절이 쇠 난로처럼 활활 되살아날까요? 살아 있던 날개를 삶아먹던 풋풋한 시간 속으로 가려면 언제까지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기다려야 할까요.

 

 강민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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