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둘러싼 조건들?
행복을 둘러싼 조건들?
  • 박성욱 전북과학교육원 파견교사
  • 승인 2020.08.27 18: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이들 작품.
아이들 작품.

 ▲멈췄다. 그리고 …….

 “유치원생, 초등학생, 중학생 중에서 누가 수업하기 힘들어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저마다 처한 상황과 입장,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서 누가 힘들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누가 그랬다. “유치원생은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힘들고 초등학교는 말귀는 어느 정도 알아듣는데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해서 힘들고 중학생은 말귀도 알아듣고 눈치도 있는데 삐딱하게 하지 않으려고 해서 힘들다.”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다. ‘행복 만들기’를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블록으로 행복을 주는 공간, 사람, 기타 여러 가지 것들을 표현하고 표현한 것들을 함께 이야기 하면서 서로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다. 중학생 친구들을 만났다. 다른 친구들 눈치 안 보고 일단 만들기를 의욕적으로 하는 유치원생, 초등학생과 달리 중학생 친구들은 일단 일시 정지 상태다. 옆에서 친절하게 안내를 해줘도 변화는 없다. ‘틱틱’ 나무 블록을 두서너 개를 가지고 만지작만지작하는 정도다. ‘내가 여기 와 앉아있지? 도대체 이건 왜 해야 하는 거지? 아 피곤하다. 귀찮다. 그냥 쉬고 싶다.’ 식이다. 수업이 멈췄다. 겉보기에는 멈췄다. 그런데 멈춘 그 순간부터가 사실은 심리적으로 가장 활동이 많아질 수 있다. 자연스럽게 친구들 옆에 앉는다.

 “요즘에 뭐 하고 노냐?”

 “아! 놀 시간이 어디 있어요. 학원 가야죠.”

 “그냥 자고 싶어요.”

 한 친구가 옆 친구에게 묻는다.

 “야! 근데 너 고등학교 어디 갈래?”

 “몰라, 엄마는 외고 가라고 하는데 갈 수 있을지…….”

 “너 공부 잘하니까 갈 수 있잖아! 나는 그냥 가까운데 가려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서로 주고받으면서 조금 가까워지게 된다.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도 앞에 무엇인가 있으면 만지작거린다. 만지작거리다가 무엇인가를 만든다. 무엇인가를 만들었는데 나름 괜찮은 모양이 만들어지면 꾸미게 된다. 나는 우선 아이들 옆에서 대화를 만들고 이어지는 사람이고 그 다음에는 조금씩 무엇인가를 만들도록 돕는 사람이다. 아이들은 나무 블록으로 처음에 네모를 만들었다. 그 네모를 바닥으로 더 넓게 펼쳐 크게 만들었다. 네모 바닥 위에 또 네모를 만들었다. 한 아이가 “교실 같네!”라고 말했다. 그러나 네모로 책상도 만들고 의자도 만들었다. 벽을 둘러서 네모난 창문, 네모난 칠판, 네모난 출입구 문도 만들었다. 네모 바닥을 더 넓게 펼쳐 나갔다.

 “학교에 꼭 있었으면 하는 곳이 어디니?”

 “휴게실이요. 휴게실에 침대로 있었으면 좋겠어요.”

 네모 바닥을 네모 통로를 따라 휴게실이 만들어진다. 휴게실에는 커다란 침대가 놓여있다.

 “야! 화장실도 만들어야지!”

 “아! 맞다.”

 휴게실과 교실 옆에 화장실도 만든다. 아이들과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수업 시간이 어느덧 후반부가 되었다.

 “애들아, 너희들이 만들 작품 제목이 뭐니? 블록으로 표현해 볼래?”

 아이들은 망설인다. 서로 작품을 보면서 이야기할 시간이 다 되었을 즈음. 아이들은 둘러싸고 있는 입시 현실을 몇 글자로 표현한다. SKY. 아이들이 표현한 교실은 작다. 교실에서 주저리주저리 피어나는 재미난 일들이 차고 넘치도록 많을 텐데 교실은 작다. 오히려 아이들은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싶다. 그래서 휴게실이 크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원초적인 공간인 화장실도 크다. 우리 아이들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작품이다. 한동안 넋 놓고 바라보았다. 나도 아이들도 묵묵히 바라보았다. 안쓰러웠다. 하지만 믿는다. 보기에는 삐딱하고 무기력해 보이고 의욕도 없어 보이지만 믿고 편안하게 옆에서 지지해주고 격려하면 언젠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직시하고 저마다 찬란한 열매를 맺을 거라는 것을…….

박성욱 전북과학교육원 파견교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