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의 역설
마스크의 역설
  • 최정호 대자인병원 성형외과 과장
  • 승인 2020.08.2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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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를 여행하면 머리에 하얀 두건을 쓴 시크교도들이 마스크를 쓰고, 조심스럽게 길을 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이들이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자신의 들숨-날숨으로 인해 작은 생명이 희생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고, 조심스러운 걸음은 발밑의 생명체를 다치지 않도록 주의하고자 함이라고 한다.

 오래전에 북경을 방문했을 때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중국인들을 보고 측은지심을 가진 적이 있다. 당시 황사 혹은 미세먼지가 심하지 않아 서울에서는 마스크착용이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이때 사람들은 물론 공기 중에 있는 미세먼지나 화공약품 찌꺼기의 유해한 부유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코로나 19 발생 전 우리는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을 지나친 건강 염려증 혹은 예민한 사람들 정도로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생각해보면 중국인들은 한국인들보다 먼저 마스크 착용에 익숙해졌고( 어쩔 수 없이) 선진국들은 일찍이 경험한 대기오염을 우려하여 비교적 깨끗한 공기를 유지한 덕에 지금은 오히려 마스크 착용에 더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아니 심한 반감을 가질 수도 있다.

 사실 호흡을 통해 전염병이 옮을 수 있다는 생각은 오래전에 알려졌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의 화생방전은 연기를 피워 적들의 호흡을 방해하는 것이다. 미생물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인류는 1900년이 다가올 때까지도 독기(나쁜 기운)가 병을 옮긴다고 생각하였으니 우리가 전염병의 원인을 알게 되고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대책을 세운다고 부산스럽게 요란을 피우는 것도 다 과학적 발전 덕택이라 할 수 있다. 1918년 유행하여 지금까지 악명이 높은 스페인 독감은 우리나라에서는 무오년 독감으로 알려졌는데 이때의 방역본부는 경찰청이었다고 한다. 그 원인균의 정체를 밝혀낸 것이 2005년이라니 이때는 강제 격리 즉 요즈음 말로 사회적 거리두기 이외에 다른 대책이 없었던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이때 일본순사들의 폭력적 강제격리 행위가 1919년 3.1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한다. 폐순환이 생명유지에 필수적 작용인 것을 잘 알기 전에도 인간은 목을 조르면 숨을 쉬지 못하여 죽는 것을 알았고, 이제는 입과 코가 공기와 함께 미세 부유물과 바이러스 등 미소생명체의 통로임을 알게 되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마스크에 집착하고 또한 타인에게도 강제하고 있다.

 시크교도가 쓰는 마스크와 코로나19시대에 우리가 쓰는 마스크의 용도는 다르다. 작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시크교도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우리는 내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스스로 번식할 수 없다. 오로지 다른 생명체에 의지하여 즉 다른 사람의 체내로 들어가 증식하여 배출될 때 새로운 숙주인 인체를 다시 감염시키는 것이다. 마스크의 착용은 무증상 감염자의 비말폭탄 공격의 차단 효과가 있다. 개체의 들숨으로 들어오는 바이러스의 침투 차단은 개체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는 동인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마스크 착용을 통하여 코로나 팬데믹을 방지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 숨을 쉬어야 생명을 유지 가능한 생명체가 마스크에 의지하여 얼마나 역병의 창궐을 막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저렴한 방비책은 거리두기가 최선인 듯 보인다. 도시화가 진행되어 사람들은 밀접하게 얽혀서 살아간다. 심하게 말하면 거의 붙어서 살아간다. 인수공동 전염병은 신석기 혁명 이후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렵생활에서 정주생활로 생태환경이 변화된 이유이다. 현대인은 이에 더해 좁고 밀도 높은 대도시 공간에서 공존해야 한다. 자연의 재해보다 다른 인간이 유해요소로 등장했고, 이 환경은 지속할 것이다. 어느 교회는 방역을 무력화하는 바이러스 자해폭탄 테러를 감행하고 이를 종교의 자유라 주장한다. 어떤 의사들은 코로나와의 전쟁 중에 전장을 이탈하면서 직업적 이익침해에 대한 정당한 저항이라고 주장한다. 일찍이 밀(J.S. Mil)은 타인에 대한 해악을 막기 위해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며 ‘위해의 원리’를 제안했다. 이것은 무제한적인 자유는 더 많은 사람에게 더 큰 구속을 초래할 있다는 ‘자유의 역설’이 아니겠는가? 호흡을 방해하지만, 호흡을 통해 확산하는 코로나를 방어하여, 호흡의 지속을 연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마스크의 역설’이 아니겠는가?

 최정호<대자인병원 성형외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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