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 쩌는 극단적 선택
뒤끝 쩌는 극단적 선택
  • 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 승인 2020.08.27 1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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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전 서울시장 죽음이 뒤끝 쩌는 극단적 선택이란 생각은 우리 사회에 미친 선한 영향력 등 마지막 길을 가는 그에 대한 추모말고 성추행 의혹 관련 기사들 때문이다. 장례절차나 과정의 논란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많이 잦아든 걸로 보이지만, 지난 한 달여를 돌이켜보면 온통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관련 뉴스가 지면을 메웠다.

  가령 피해자와 공동 대응하고 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가 ‘서울시 진상규명 조사단 발표에 대한 입장’을 내고 서울시장 비서실에서 만연한 성희롱ㆍ성차별 정황을 공개한 걸 들 수 있다. ‘이게 실화냐?’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선뜻 믿기지 않는 내용들이다. 느닷없는 박원순 서울시장 자살보다 더 역대급 충격으로 다가오는 성범죄 내용이기도 한다.

  보도 내용을 보면 박 시장은 매일 아침ㆍ저녁 혈압을 재는데, 항상 피해자를 포함한 비서실 여성 비서가 그 업무를 맡아야 했다. 피해자가 “가족이나 의료진이 혈압을 재는 게 맞다”는 의견을 냈지만 박 시장은 이를 거부했고, 오히려 “자기(피해자 지칭)가 재면 내가 혈압이 높게 나와서 기록에 안 좋아”라고 성희롱 발언을 했다고 여성단체는 밝혔다.

  또한 변호사가 포함된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측은 4년간 피해자의 고충 호소를 듣고도 묵살한 서울시 관계자들이 20여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도움을 주겠지 하는 심리적 요인 때문에 책임을 회피하게 되는 현상을 ‘제노비스 신드롬’이라 하는데, 그들의 성범죄 방조 혐의를 폭로한 것이다.

  그 20여 명 중에는 ‘6층 사람들’로 불리는 정무직 참모와 인사담당자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네가 예뻐서 그랬겠지”라는 식으로 외면하거나, “남은 30년 공무원 생활을 편하게 해줄 테니 다시 비서로 와 달라”고 회유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 20여 명은 시민단체에 의해 성추행 방조 등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망자(亡者)에 대한 예의가 아닐지 몰라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1차로 잘못한 것은 응당 극단적 선택이다. 이른바 위력에 의한 성범죄가 일어나는 사회가 아니어야 하지만, 피해자 고소 내용이 사실이라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나 오거돈 전 부산시장처럼 살아서 ‘떳떳히’ 대가(代價)를 치러야 했다. 그게 미처 깨닫지 못한 실수나 잘못에 대한 공인(公人)으로서의 책임지는 모습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차로 잘못한 것은 기왕 남긴 유서라면 “내가 했다”고 명백히 밝히지 않은 채 두루뭉술하게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고 한 점이다. 만약 “내가 그랬다. 피해자에게 미안하다”고 밝혔다면 그의 자살이 그렇듯 뒤끝 쩌는 극단적 선택으로 남진 않았을 것이다. 뿐아니라 ‘공소권 없음’과 함께 죽음으로 죗값을 치른 셈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로 성추행 의혹이 밝혀진다 해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 이후 벌어진 모든 일들은 없어도 될 불필요한 것들이란 생각엔 변함이 없다. 민폐일 뿐 아니라 국력 낭비란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죽음은 모든 게 끝난 걸 의미하는데, 그러지 못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이 안타까울 뿐이다.

 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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