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 오로지 오롯한 구국정신
완주 : 오로지 오롯한 구국정신
  • 조윤수 수필가
  • 승인 2020.08.2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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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되짚는 전북 구국혼 (9)

■ 비비정에 올라

비비정에 올라 강변 들녘을 내려다보며 애국정신으로 나라를 지켰던 선열들의 자취를 생각해본다. 2020년은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아주 중요한 해이기 때문이다.

만주에서 제국 일본군을 대상으로 승리를 거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6.25전쟁 70주년이기도 하다. 초록이 무성하여 싱그러운 계절 덩굴장미 빛보다 붉은 젊은 피를 토하며 사라져 간 영령들이었다.

삼례는 한양에서 충청도를 지나 호남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충무공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했던 길목이었다. 독립운동의 마중물이 되었던 동학의 농민군이 서울로 진격한 장소이기도 하다.

호남의 최대 역창이 있었던 삼례는 전국 9대 간선도로 중 삼남대로 (한양- 삼례 ? 통영)의 분기점이자 13개 역을 총괄했던 찰방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국도 1호선과 전라선 철도 중심지인 삼례역을 통해 만경강 일대의 쌀이 집산되어 군산항으로 운송되었다.

한때는 바닷물이 만경강 지류를 타고 삼례 비비정까지 배가 들어왔다. 1967년 읍으로 승격돼 지역경제가 활성 될 때는 대지주도 많았다.

■ 암야의총소리- 신창리 권총사건의 주인공 김춘배 의사 고향

삼례교회 첫 신자인 김헌식의 아들 김창언과 그 손자 김성배, 김춘배, 김형배 등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서 만주로 이주하였다.

만주로 이주한 김창언 등, 50여 명에 이르는 삼례인들은 만주에서 구국의 일념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 그중에 김춘배는 감시의 눈을 피하고자 이명으로 여러 번 이름을 바꾸기도 하였다. 중국 길림성 돈화현에 근거를 두고 활동하던 독립운동 단체인 정의부 부대에 가담하여 권총 2정과 실탄 17발로 무장한 뒤 6차에 걸쳐 자산가를 역방하며 무장 항일운동을 위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간도에 주재하고 있던 일본 영사관 소속의 일경에게 피체되었다. 이에 청진지방법원에서 징역 6년형을 언도받고 청진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28년 7월 탈출을 시도하여 성공하였으나 재차 피체됨으로써 징역 1년 10개월이란 기간이 가중되어 모두 8년의 옥고를 치르고 1934년 5월에야 출옥하였다.

김춘배의 구국정신은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과 같이 다시 일어났다. 출옥한 뒤에도 함남 북청군 양북면 신창에 소재한 경찰주재소의 무기고를 단신으로 공격하여 파괴하고, 권총 2정과 실탄 100발 및 장총 6정과 동 실탄 600발을 탈취한 후, 일경 자경단원 등 2만여 명이 동원된 일제의 포위망을 피해 일인 순사부장을 비롯한 2명에게 총상을 입히는 등 맹렬한 활동을 펴다가 19일만에 서울로 향하는 열차에서 일경에게 피체되었다. 김춘배의사는 1934년 11월 26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주거침입과 절도·강도·살인미수 그리고 공무집행방해죄 등으로 무기징역을 언도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삼례인들의 출신지인 삼례제일교회를 찾았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교회 문 앞에서 그들의 치열했던 구국정신을 생각하니 숙연해져서 가만히 앉아 잠시 묵념에 젖었다. 김춘배를 비롯한 독립운동의 정신을 고취하기 위하여 삼례예술촌에서는 삼례정신을 되찾아 기리기 위한 학술대회를 가졌다. 그들이 일심전력의 구국정신을 키웠던 양곡창고와 양곡수탈 중심지의 현장이었던 삼례예술촌, 마땅히 찾아야 할 삼례정신의 중심에 김춘배 일행의 독립의지와 구국정신이 있었던 것이다.

■ 완주의 정신을 담은 독립운동추모공원

경천면에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데, 이 저수지도 일제가 농토를 적셔 쌀을 수탈하기 위해서 조성하였다. 저수지 아랫길로 계속 달리면 불명산 화암사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독립운동추모공원이 있는 만수동 길은 용복 터널을 통과하여 왼편으로 난 길로 들어가면 바로 추모공원이 나온다.

이 공원은 완주 출신 독립운동가 장병구를 비롯한 29명을 추모하는 공원이다. 완주 출신 순국선열 빛 애국지사의 애국애족 정신을 고취하고 민족정기를 선양하기 위해 건립했다. 애국지사 백산 장병구선생의 구국비가 거북 받침돌에 무궁화를 머리에 이고 현충문 앞마당에 서 있다. 옆의 석판에 새긴 추모시가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한옥 구조의 외삼문, 현충문 계단으로 오르면 먼저 만나는 탑이 ‘독립운동추모탑’이다. 등대 모양으로 우뚝 선 탑 앞의 향로 앞에 서서 묵념한다. 탑 뒤에는 석판에 독립선언문이 새겨져 있고 독립운동가 28인의 명판도 서 있다. ‘나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민족의 얼 - 이 한 몸 바쳤노라.’

그 옆에 ‘베트남참전기념탑’과 ‘6.25 참전기념탑’이 나란히 서 있다. 6.25와 베트남참전의 현대사를 겪어온 한 사람으로 전란의 위기의 어려웠던 한 시대를 떠올리며 목숨을 바친 영령들께 새삼스런 감사의 정을 올린다. 유족의 심정으로. 이렇게 살아남아 조국의 영광을 보게 해준 영령들이 아닌가.

공원은 전통적인 한옥 정원을 구상하여 한국의 정신을 담아 표현한 것 같아 거룩하게 보였다. 조용하게 산책하며 선열의 정신을 새기며 기원을 담아볼 수 있는 공원을 여태 찾지 못한 죄스러움도 가지게 했다.

■ 천호성지

천호길을 따라 천호성지를 찾았다. 이곳은 조선 후기 흥성대원군이 천주교도들을 대량 학살한 병인박해 당시 천주교도들이 피난처로 은거했던 곳으로 순교자들의 무덤이 봉안된 곳이다. 부활성당과 기도처들의 건축물이 있고. 무덤이 봉안된 곳에서 기도를 올릴 수 있다. 숲속 공원의 기도하는 나무 산딸나무 아래에서 독립의지를 불태웠던 영령들께도 봉헌의 기도를 올렸다.



 # 한집안에서 아홉 의병을 낸 비봉

비봉면에 있는 ‘일문구의사사적비’를 찾아가는 길.

“수려한 금수강산 천호산 아래/ 흐르는 시냇물에 꿈을 싣고/ 찬란하게 빛나거라

비봉의 샛별/ 빛나거라 비봉학교/ 배움의 동산. 내 나라 겨레 위해 힘써 배우고/모두 다 한 맘으로 굳게 뭉치자.”

 비봉초등학교 교가에 비봉면의 경치와 정신이 담겨 있다.

‘일문구의사사적비’는 거북좌대에 귀면 상을 조각한 머릿돌로 구성하고 좌우에는 열녀각도 있었다. 고흥유씨 가문의 일문9의사는 비봉면 내월리 출신이다.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유지명과 같이 의병을 일으켜 고산, 익산을 비롯한 전북 일대에서 적을 토벌하였다. 의진이 해산되자 유치복을 중심으로 한 9의사는 경술국치 이후까지도 행적을 숨겨가면서 항일지하운동을 계속하였다.

유연봉은 유현석 등 7명과 더불어 수차례군자금 모금활동을 하였다. 은거하던 중 일경에게 체포되었으며, 전주에서 12년 형을 받고 유명석, 유태석, 유준석은 15년 형, 유영석 10년 형, 유연청, 유현석과 유연풍은 12년 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일문구의사선양사업회 (유희태) 는 9의사사적비를 세우고 공원도 조성하여 매년 추모제를 열고 있다. 9의사와 많은 투사들이 지켜낸 고장 비봉은 봉황이 나는 고장인가. 푸른 산에 붉은 연산홍이 빛나는 비봉공원의 장승이 ‘어서옵소서’라고 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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