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여 쓴 시, 더 깊이 있는 깨달음…나혜경 시인 ‘파리에서 비를 만나면’
줄여 쓴 시, 더 깊이 있는 깨달음…나혜경 시인 ‘파리에서 비를 만나면’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0.08.26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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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예 도착하지 않는 일/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일/ 아마 도착하지 않을 일// 그러든지 말든지 마당 가득 맘 놓은 푸르름” 「생걱정」전문

 의식적으로 줄여 쓴 시 덕분일까? 구구절절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끝내 와닿고마는 시어들. 더 깊이 있는 깨달음이 가슴을 파고든다.

 나혜경 시인의 ‘파리에서 비를 만나면(역락·1만3,000원)’에 새겨진 짧고도 강렬한 시를 읽으면서 무릎을 치거나, 빙그레 미소짓거나, 눈시울을 붉히게 된다.

 ‘괜찮다고 말하면’에서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는 게 더 나을 때가 있다”거나 ‘단식을 하면’에서 “사람 만날 일이 뚝 끊긴다”는 시인의 깨달음에 나도 모르게 맞장구를 치고 있다.

 핸드폰이 먹통이 된 날엔 ‘다행이다’라고 네 글자를 적으며 “0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0이 있어 다행이다/ 없음에 기대어야 시작할 수 있는 날들이 있다”고 전화위복의 정신을 발휘하는 기쁨마저 유쾌하다.

 시인은 그렇게 “시를 줄어 쓰는 동안 말도 조금씩 줄어 고요가 좀 더 촘촘해지길” 바라며 말과 말, 시어와 시어 사이에 파리의 풍경을 끌어다 두었다. 시집 속 파리 풍경은 김동현 포토그래퍼가 남겼다.

 나혜경 시인은 “사진 속에 담긴 시간과 장면이 시가되고 시는 또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 서로 낯설게, 또 서로 너그럽게 어우르고 스며들기를 바란다”며 “가끔 이곳에 없는 나를 데려오는 일은 즐겁기도 하고 고되기도 하였으나, 그것조차 바람처럼 왔다 가는 일. 그러니 모두가 무겁고도 가볍다”고 했다.

 나 시인은 1991년 ‘개망초꽃 등허리에 상처난 기다림’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 ‘무궁화, 너는 좋겠다’, ‘담쟁이덩굴의 독법’, ‘미스김라일락’을 냈다. 전북시인상 등을 받았고 원광대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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