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의 한국 방문
채식주의자의 한국 방문
  • 박은숙 원광대 사범대학장 / 교육대학원장
  • 승인 2020.08.25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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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미국인 지인은 채식주의자인 J박사님이시다. 아내와 아들, 딸까지도 채식주의자이다. 처음 아내를 만났을 때 채식주의자여서 호감을 느꼈다고 하셨다. 자녀는 태어날 때부터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J박사님은 20여년 간을 해마다 가을이면 한국을 방문하신다. 올해는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하여 한국 방문이 어려울 것 같아 아쉽다는 이메일이 왔다. 한국에 오실 때마다 우리집에서 하루나 이틀을 머무신다. 외국인에게 최고의 대접은 현지 가정집에 머물며 현지인과 더불어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J박사님이 오실 때마다 우리 가족은 집안 청소 등으로 손님맞이에 부산하기만 하다. 아침은 주로 집밥으로 대접하고, 점심과 저녁은 강의 등으로 외식한다. 고기를 넣지 않는 맛있는 아침 식사를 한식으로 준비하기란 쉽지 않다. 밥, 국, 다양한 김치를 주로 준비한다. 고기를 넣지 않은 잡채도 아침에 만들곤 한다. 일 년에 한번은 아침밥을 잘 차리는 그야말로 좋은 아내가 되곤 한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외식 메뉴 주문도 만만치 않다. 비빔밥이나 잡채밥을 주문할 때에는 고기를 빼달라고 하며, 칼국수를 주문할 때에는 조개, 멸치를 빼달라고 한다. 한정식을 주문할 때에는 고기 반찬은 가져오지 말라고 한다. 반찬으로 나오는 젓갈 등도 식탁 한 켠에 밀어놓곤 한다. J박사님은 한국에서의 식사를 즐기신다. 손님을 안내하는 우리도 기분도 좋다.

 몇 년전 J박사님은 청년이 된 아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셨다. 아침은 집밥으로 대접하였다. 열살이던 해부터 알게 된 사이여서인지 우리집에 와서 낯설어하지 않았다. 직접 음식을 만들어 주어 고맙다면서 아침 식사도 맛있게 했다. 그러나 채식주의자 청년의 외식은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점심식사를 위해 콩나물국밥집으로 가서 콩나물국밥을 주문하였다. 달걀은 괜찮지만, 고기, 생선, 조개 등은 빼고 3인분을 주문했다. 이럴 때는 나도 채식주의자가 되곤 한다. 주문받으시는 분은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채식주의자용 콩나물국밥이 나왔다. 미국 청년은 처음 보는 음식이라며 호기심 가득한 얼굴이었다. 숟가락으로 국물 맛을 보라는 나의 제의에 눈을 크게 뜨며 맛이 매우 훌륭하다고 했다.

 몇 입 먹던 순간, 그는 “대디”하고 큰소리로 불렀다. 숟가락 위에는 작은 황태 한 조각이 놓여 있었다. 채식주의자가 먹어도 되는지를 물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J박사님은 나의 표정을 살폈다. 청년도 당황스런 기색이 역력했다. J박사님에게 이런 상황이 생겼다면 그 조각만 빼고 드시면 채식 식단이라고 우길 수 있지만 처음 한국을 방문한 청년에게는 그럴 수 없었다.

 통계에 의하면 채식주의자 비율은 인도는 전체 인구의 29~40%이며,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은 5% 내외이다. 동양권인 대만은 13~14%, 일본 4.7%, 중국 4.5%이다. 우리나라 편의점에서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냉동간편식, 채식주의 도시락, 채식주의 샐러드, 콩불고기버거 등이 이미 판매되고 있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단체급식 메뉴도 개발되고 있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외식 메뉴를 개발하고, 메뉴판에도 ‘채식주의자용’임을 표기할 필요가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채식주의자들이 음식점에서 메뉴를 쉽게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박은숙<원광대학교 사범대학장/교육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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