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전북문학기행> 12.냇가 건너면 임실군을 마주하는, 진안군 장성마을에서 마주한 여름, 이병일 시집 ‘나무는 나무를’
<2020 전북문학기행> 12.냇가 건너면 임실군을 마주하는, 진안군 장성마을에서 마주한 여름, 이병일 시집 ‘나무는 나무를’
  • 이휘빈 기자
  • 승인 2020.08.23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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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성마을의 버스정류장 뒤 큰 나무들은 8월의 땡볕 속에서 더욱 늠름하다. 나뭇잎들이 바람이 번지는 사이로 버스정류장은 덩그러니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걸음으로 찾은 장성마을은 지난 장마와 다가온 폭염 사이에서도 담배꽃처럼 꼿꼿했다. 길은 조용했지만 마을을 따라 흐르는 냇물은 우렁찼다. 마을 길은 큰물이 흐른 흔적이 드문드문 보였지만 이제는 닥쳐올 더위 속에서 자라나는 모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진안군 장성마을에서 이병일 시인은 어린 시절에 대해 ‘담배꽃이 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말했다. 이병일 시인은 진안군 장성마을에 대해 ‘냇가 한번 건너면 임실군이 바뀐다’며 장성마을의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이병일 시인은 첫 시집 ‘옆구리 발견’에서부터 ‘마이산 천지탑’, ‘돛대봉’등을 함께 담았는데, 그렇다고 시인이 진안군에 대한 예찬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시인의 시에는 ‘구례 화엄사’, ‘격포’, ‘작은 신앙’ 등에는 전북의 영향이 닿는 소재들도 함께 담겨 있다. 이 장소들은 시인의 영감을 속삭이지만, 시인의 눈은 거기서 더 나아가 이야기를 일근다.

 시인의 시집 ‘나무는 나무를(문학수첩)’에서 ‘백운(白雲)’이라는 시가 있다. 이 시는 진안군 백운면과 ‘응사(鷹師, 매사냥꾼)’을 유심히 쳐다본다. 이 시의 2연 ‘응사는 작은 그늘 속에서 칡꽃을 찾고, 매는 진안고원에서 향기를 잡으리라’는 꽃과 향기로 매와 매잡이를 엮지만, 진안 백운면은 은은한 안개처럼 배경으로서 역할로 충실하다. 마지막 2행인 ‘나는 숨을 구부리면서 / 백운(白雲)이 커지는 것을 바라봤다’에서 흰 구름과 매와 매잡이와 백운면은 하나가 된다.

 이 시인은 고향인 장성마을에 대해 ‘치유의 공간이다’라고 말했다. 이 치유는 심리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치유다. 시인은 “서울에 살지만 몸이 아프고 심한 투통을 앓으면 진안으로 내려간다. 집에 도착해서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을 먹고 저수지 한 바퀴를 돌면서 저녁노을을 바라보면 저절로 몸이 좋아진다. 그렇게 고향은 치유의 공간이 된다”며 “특히 여름날 ‘백운동 계곡’에서 몸을 담그고 있으면 온몸의 피가 맑게 틔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고 웃었다.

 시인은 ‘진안장’, ‘임실장’, ‘관촌장’에 갈 때, 어머니를 모시고 쌍화차를 마시러 마이산에 들를 때, 그 주변의 일들이 시의 이미지와 시의 사건이 됨을 설명했는데, 특히 작은 읍과 면소재지에 있는 상점들을 세심하게 바라본다. 그 과정에서 특별한 이야기가 다가온다고 하는데, 시인은 진안군의 동물들과 식물들 사이에서 사람이야기를 조각하듯이 찾는다. 그 과정을 시인은 ‘시는 늘 딴청을 부려야 한다’며 다시 미소지었다.

 장성마을의 푸르른 논밭, 흙길, 모정의 그림자, 맹렬한 시내 소리, 이 모든 것들이 언젠가 시인들의 이야기가 될까. 시인은 이 고장에서 어떤소리를 담을까를 땀흘리며 바라봤다. 능선을 따라 멀리서 마이산이 쫑긋거리고, 흰 구름 사이로 매가 나는 모습을 생각하며, 시는 여유와 딴청 속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짚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되새겼다.

이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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