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고 좋은 날 - 텃밭에 보리벼를 심었어요
덥고 좋은 날 - 텃밭에 보리벼를 심었어요
  • 진영란 장승초등학교 교사
  • 승인 2020.08.20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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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볍씨를 관찰하고 그린 것을 이슬농부님께 보여드렸더니, 오늘 벼공부가 더 재미있을 거라며 기대를 하신다. 이슬샘이 못자리에서 떠온 모를 한 바가지 가지고 오셨다.

 “이게 뭔지 알아요?”“모잖아요.”“어? 1학년이 모를 어떻게 알아요?”“어제 심어 봤어요.”한 번 해 봤다고, 대답이 씩씩하다.

 “그럼 모가 크면 뭐가 되는지 알아요?”“벼가 되잖아요.”

 “오잉? 그럼 이 모는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요?”“볍씨요!”

 초보 농사꾼 치고 아이들이 모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이슬샘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신다.

 “여러분이 어제 심은 것은 볍씨에서 싹이 조금 튼 것이고, 샘이 가지고 온 것은 더 자란 거예요. 잎이 몇 개인지 세어볼까요?”

 선생님이 가지고 온 모는 본잎이 3장이나 났다. 어제 우리가 심은 건 떡잎싸개에 쌓은 아주 여린 싹이 하나 난 것이었는데 역시 튼실해 보인다.

 

 모를 더 자세히 보려고 바가지에서 들었더니 논에서 함께 딸려온 식구들이 보인다. 우렁이, 거머리, 물방개를 찾아낸다. 벼에 딸린 우렁이 알도 있다.

 “선생님! 저 검은 건 지렁이에요? 크기가 자꾸 변하네요!”“이 친구는 거머리예요. 물 속에 사는 동물의 피를 빨아먹고 살아요.”

 “그럼 우렁이 피도 빨아먹나요?”“그럴 수도 있지요.”

 “그럼 거머리는 나쁜 거네요! 처치해야 해요!”

 아이들이 흥분해서 거머리를 당장 집어낼 태세다.

 “거머리도 논에서는 아주 중요한 친구예요. 그러니까 누가 나쁘고, 누가 좋다고 할 수 없는 거지요. 모두 함께 살아가는 거예요. 여러분이 나쁘다고 생각했던 풀도 땅을 위해서 피부가 되어 주는 것처럼 말이에요.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것이지요.”

 아이들은 그래도 피 빨아먹는 거머리는 받아들이기 힘든가보다.

 “거머리를 염증을 치료하는 데 쓰기도 해요. 아픈 부위의 나쁜 피를 거머리가 쏙 빨아내게 하거든요.”“아, 그럼 거머리 의사선생님이네요!”

 모든 생명체는 각자 존재해야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그 이유를 인간의 필요에 의해 함부로 재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이 조금씩 알아갔으면 좋겠다.

 

 보리벼 모를 밭에 심을 차례다.

 “논에 모를 심을 때에는 살포시 심지만, 밭에 심을 때에는 뿌리에서 여러분 손톱만큼 올라온 데까지 땅에 묻히도록 심어야 해요. 그래야 넘어지지 않고 뿌리를 내릴 수 있거든요. 논에는 다섯 포기 정도 심는데 밭에는 그것보다는 조금씩 심어요. 여러분은 몇 포기씩 심어볼래요?”“한 포기요! 우리가 하는 게 모내기지요?”

 어제 교실 창문 아래 화단에 한 톨씩 심은 것이 생각났는지, 우리 아이들은 한 포기씩 심겠다고 한다. 모를 한 포기씩 찢어서 각자 심고 싶은 위치에 정성스럽게 심었다. 그새 땅이 다져졌는지 손가락으로 파기가 어려운 곳도 있었다.

 “벼는 원래 물을 좋아하는 식물이에요. 논에는 늘 물이 있는데 여러분은 밭에 심었으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물을 잘 줘야 해요.”

 아이들은 모를 심자마자 조리개에 물을 떠서 정성스럽게 준다.

 “모가 밭에 난 풀들과 헷갈릴 수도 있어요. 모에 이름표를 붙여주면 좋겠어요.”

 동글납작한 돌을 주워서 잘 씻고 말려서 자기가 심은 벼 이름표를 만들었다. 그림책 ‘모모모모모’를 읽은 탓인지 벼 이름이 ‘모’가 많다. 그래도 각자 의미가 담긴 이름이니 지금은 여린 모 한포기지만 특별한 존재가 될 것이다.

 

 모를 심고 텃밭을 둘러보았다. 일주일 새 풀들이 정말 많이 자랐다. 급한 대로 풀을 긁고 있는데, 5학년 형님들이 틀밭을 꾸미지 않았던 곳에서 풀을 뽑고 있다. 울창하게 자란 풀은 풀이불하기에 딱이다.

 “그 풀 좀 우리 줄래요?”

 “풀은 뭐하게요? 여기에 모아 둘테니 가져다가 쓰세요.”용도를 몰랐는지 5학년 선생님의 대답은 시큰둥하다.“아, 풀이불이요?”

 작년에 텃밭수업을 했던 5학년 학생들은 풀의 용도를 알아차린다. 형님들이 풀을 수십 번 날라다가 틀밭에 덮어 주었다. 덕분에 당분간 풀 걱정은 조금 덜 수 있게 되었다.

 

 풀도 많이 자랐지만, 우리 생태텃밭에도 반가운 변화들이 보인다. 오이꽃도 피고, 가지꽃도 피었다. 해바라기 봉숭아는 튼실하게 잘 자라고 있고, 지난주에 우리에게 상추 샐러드를 선물해 주었던 상추도 다시 잎이 무성해졌다. 생명은 참으로 신비로운 것 같다. 감자도 자주꽃 하얀꽃을 조화롭게 피워내고 있었다.

 이슬샘이 자주꽃 핀 감자 앞에서 묻는다.

 “이 감자는 무슨 색일까?”“자주색이요!”“어떻게 알았어요? 땅 속이 보이나?”“자주색 꽃이 피었잖아요.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잖아요!”성주가 야무지게 대답한다. 흙을 살짝 긁어내 보았더니 정말 아름다운 자주빛 감자가 숨어 있다. 자주색을 확인하고 다시 살포시 덮어주었다. 하지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고, 지금 한창 알이 굵어지려고 하니 말이다. 하얀꽃 핀 감자 앞에서 선생님이 다시 묻는다.

 “이 감자는 무슨 색일까?”

 “하얀색이요!”

 아이들이 일제히 대답한다. 살살 흙을 긁어보았는데 깊이 파내려가도 감자가 보이지 않는다. 아직 줄기가 굵어지지 않았나보다. 감자 찾기를 포기하고 흙을 덮어주고 있는데

 “여기 무당벌레 있어요! 28점 무당벌렌가 봐요!”아이들이 무당벌레를 찾아냈고, 이슬샘이 무당벌레가 내려앉은 감자잎을 따서 아이들과 관찰한다. 28점 무당벌레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감자잎을 갉아먹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감자잎이 망사처럼 구멍이 뚫려있다. 28점 무당벌레의 작품이다. 잎을 뒤집어 봤더니 노린재가 낳아놓은 알도 보인다. 28점 무당벌레는 초식이라서 식물의 잎을 갉아먹고 산다. 칠성무당벌레는 육식이라서 진딧물을 잡아먹는다는 설명을 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칠성 무당벌레가 먹이를 찾아 비행을 하고 있다. 감자 앞에서 한참 무당벌레 공부를 하고나서 목화를 살펴봤는데 이파리가 오글오글한 것이 벌레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진딧물이 붙어 있다. 고추에도 진딧물이 생겼다.

 

 “아! 이 진딧물 어떡해요? 식물 다 죽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에도 이슬샘이 아이들에게 묻는다.

 “죽여야죠!”아이들의 대답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

 “우리 진딧물도, 작물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이들은 또 어리둥절하다. 어떻게 해충이랑 우리가 좋아하는 작물이 공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슬샘이 어떻게 풀어나갈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우리 아이들의 생각은 어떻게 바뀔까?

 

진영란 장승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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