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반세기 동안 발표한 시를 가려 뽑아 엮은 박해석 시선집 ‘기쁜 마음으로’
4반세기 동안 발표한 시를 가려 뽑아 엮은 박해석 시선집 ‘기쁜 마음으로’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0.08.19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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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 살을 떡처럼/ 떼어 달라고 하지 않으마/ 너희 피를 한잔 포도주처럼 찰찰 넘치게/ 따르어 달라고 하지 않으마//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앉은 바로 그 자리에서/ 조그만 틈을 벌려주는 것/ 조금씩 움직여/ 작은 곁을 내어주는 것// 기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전문

 강렬한 시어, 간곡한 목소리로 세상을 통찰하고 있는 시인이 있다.

 전주 출생의 박해석(70) 시인은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극소수의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시인 중 한 명이다.

 박 시인은 1995년 국민일보 문학상 시 부문에서 첫 번째로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한 권 분량(50편)의 시를 투고하는 당시 응모 규정에 따라 시인의 수상작은 그대로 첫 번째 시집 ‘눈물은 어떻게 단련되는가’로 출간됐다.

 이후 세 권의 시집, ‘견딜 수 없는 날들’, ‘하늘은 저쪽’, ‘중얼거리는 천사들’을 선보인 시인은 시작을 하면서 보낸 4반세기를 그동안 발표한 시를 가려 뽑아 엮은 시선집 ‘기쁜 마음으로(파라북스·1만2,000원)’로 정리했다.

 박 시인은 리얼리즘 시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등단 당시 심사위원으로부터 “그의 시들이 갖는 호소력은 세상을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과 고뇌의 구체적 형상화에서 오는 것 같다”(신경림), “이 나라의 정치적 후진성이 만들어낸 참상에 대한 그의 부끄러움과 아픔이 지속적이다”(정현종)는 평을 받았다.

 총 120여 편의 작품이 수록된 이번 선집은 시인의 시가 생활 경험의 구체성에 뿌리박고 있으며, 진정성으로 똘똘 뭉쳐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의 시들에 깔린 밑바닥의 정서는 사회와의 불화 혹은 만성적인 갈등으로 볼 수 있는데, 각박한 세상살이를 견뎌내면서 끝끝내 시를 써 올 수 밖에 었었던 이유가 페이지마다 새겨져 있다.

 시인은 세상의 암흑을 외면하지 않았다. 시인은 시인으로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시적 정체성을 ‘가시’로 인식하며, 그 ‘가시’를 그냥 놔두고자 했다. 세속의 부귀에 항복하지 않았던 김수영 시인을 향한 깊은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는데도 거침이 없었다.

 시인이 바라본 세상은 냉혹했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의 따뜻한 시선을 끝내 잃지 않는다. 그 역시도 각박한 세상살이를 견뎌내고 겨우 시를 써왔으면서, 험악한 세상을 향해 “작은 곁을 내어주라”고 말하는 믿음처럼…. 삶의 굴곡과 음영을 진솔하게 그려내는 그의 언어는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염무웅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그동안 녹록지 않은 생활현실의 압박을 감내하면서도 시인으로서 지켜야할 최소의 양심을 잃지 않으려 했고, 자기 시대를 지배한 불의와 비참에 대해 적어도 시에서만은 민감하게 반응했으며, 그것에 과감히 행동으로 맞서지 못한 자신의 소심함과 양심의 가책을 진지하게 시에 담았다”며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느낌을 단아하게 정돈된 우리말의 질서 안에 표현했다”고 평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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