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 씨와 클레멘타인
만수 씨와 클레멘타인
  • 하기정 시인
  • 승인 2020.08.18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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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곡의 노래는 엽서 같아서]<23>

 나에게는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의 가짓수만큼이나 좋아하는 노래가 많다. 잡식성이고 기분에 따라 먹고 싶은 것이 달라지듯 다양한 노래가 있다. 가끔은 가만히 부르고 싶은, 기억하지 않을 수 없고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노래, 혹부리영감이 나타나 노래주머니를 달래도 절대 뺏기고 싶지 않은 노래가 있다. 도래하지 않았지만 좋아하게 될, 어디선가 만들어지고 있을 노래도 있다. 그러나 시시때때로 찾아와서 나를 울리는 단 하나의 노래가 있다. 가연(歌緣)이라 할 수 있는, 연결된 끈 같은 노래가 있다.

 내가 고를 수 있는 어휘가 늘어나 꼴을 갖춘 문장을 만들고 대화에 의도를 집어넣어 상대방의 말을 계산하기 시작할 다섯 살 무렵, 아버지로부터 배운 노래였다. 섬진강 상류에 살았던, 아주 어렸을 적 옛집 풍경은 아버지가(그의 장례를 치르던 날 그를 아는 모든 지인들에게 ‘너무 좋아서 다시 없는 사람’으로 말해지고 있으므로, 생전에 호명되었던 이름인 ‘만수’ 씨로 부르겠다.) 전날 저녁 무렵 던져 놓은 그물을 다음 날 아침에 걷어 와 너른 마당 한가운데 바지랑대가 팽팽히 지탱하고 있는 빨랫줄에 펼쳐놓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가장인 만수 씨가 그물코에 걸린 붕어니, 꺽지니, 수염 달린 메기니 하는 물고기들을 회색 양동이에 담아내곤 하던 그림 같은 장면이 내겐 있다. 그물에 잡힌 물고기들은 아직 살아있어서 힘찬 꼬리를 팔딱이면, 만수 씨는 미끄러지려 하는 물고기가 손아귀에서 빠져나갈까 봐 안간힘을 썼다. 가끔 제가 살던 깊은 물속을 닮아 굵고 거뭇한 반점이 듬성듬성 있는 가물치라도 잡힌 날이면, 그물에서 펄떡이며 다시 강물 속으로 뛰어 들어갈 기세를 꺾느라 만수 씨의 얼굴은 붉고 건강한 힘줄이 섰다. 손아귀로부터 시작한 긴장이 눈동자와 어금니까지 힘이 들어가 젊은 그의 남자다운 굵은 턱선이 도드라져 보이곤 했다. 그날의 표정이 내게 각인된 것은, 그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매 순간 견디고 버티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의 표정은 그가 살아온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나온 까닭이었다.

 만수 씨의 안간힘으로 결국 다른 잡물고기들과 양동이 속으로 들어간 가물치는 비좁은 무리들 속에서도 큰 덩치를 한참 동안 둔탁하게 펄떡이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그 펄떡이는 물고기들은 어린 내가 봐도 매우 풍요로운 광경이었는데, 이런 날 만수 씨는 풍어의 축가를 흥얼거리곤 했다. 그는 어부는 아니었으나 꽤 어부 같았다. 그가 20대 중반 서해의 어느 해수욕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비슷한 수영복에 비슷한 선글라스를 끼고 허리에 양손을 올리며 비슷한 포즈로 찍은 흑백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선주나 선장 같았으나, 아무튼 그 노래는 풍요롭기보다는 어린 딸을 먼저 보내고 온갖 마음의 풍상을 겪은 한 아버지의 애처로운 이야기였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듣기에는 너무나도 슬픈 가사와 곡조였다. 만수 씨는 물고기를 양동이에 담고 있는 모습을 재미지게 지켜보는 그의 어린 셋째 딸, 내게 한 소절씩 따라 부르게 했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부터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슬픈 가사에 매료되었던 나는 단번에 배우고 혼자 불러보다가 만수 씨와 함께 부르기도 했다.

 만수 씨는 면 소재지의 행정적인 일을 맡아 하고 있었으니 어부도 아니었고 바닷가 아닌 농촌과 산촌에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내게 공감이 가는 노래는 아니었으나, 그날의 나는 모든 소절마다 ‘쓸쓸한’이라는 말이 생략됐을 법한 이 노래 가사를 오래도록 생각했던 것 같다. 클레멘타인이라는 철없는 아이가 늙은 아버지를 혼자 남겨 놓고 왜 바닷가로 갔는지 참으로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만수 씨는 이 쓸쓸한 노래를 매우 힘차게 불러서 나를 더 헷갈리게 했다. 인생은 원래 쓸쓸한 것이니 쓸쓸한 일이 있어도 힘차게 살아야 하는 것이고, 너무 힘을 들이며 사는 것도 지나고 보면 결국은 쓸쓸한 일이니, 잘 나가던 길에 갑자기 바윗돌이 가로막힌다 한들 놀라지 말 것이며, 큰일이나 작은 일이나 동요하지 말고 그저 굳건히 살라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생전에 좀 물어보기라도 할 것을… 후회스럽지만,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4분의 3박자의 노래 ‘내 사랑 클레멘타인’은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이란 고통도 노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해준 노래였다. 어쩌면 만수 씨는 어린 딸에게 아직은 ‘삶’이라는 어려운 말을 들려줄 수가 없어서 말 대신 노래로 알려준 것은 아닌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글 = 하기정 시인

 ◆하기정

 2010 영남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밤의 귀 낮의 입술』발간, 5·18 문학상, 작가의 눈 작품상, 불꽃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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