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의 잔상(殘像)
여름휴가의 잔상(殘像)
  • 이용섭 전북선관위 상임위원
  • 승인 2020.08.1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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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휴가 때면 온 가족이 들썩인다. 산으로 갈지 바다로 갈지 행선지를 정하는 것부터 무엇을 먹고 어떻게 보낼지 각자 생각이 달라 이를 모으고 결정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COVID-19)로 가고 싶고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일상생활 속에서 마스크를 써야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등교를 하더라도 모둠 활동을 할 수 없고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쓴 채 있어야 한다. 점심시간에도 칸막이를 하고 식사를 하며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대화를 하거나 어울리지 못한다. 이를 두고 코로나 외톨이 ‘M(마스크)세대’라고 부른다. 비단 학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여름휴가는 가족, 연인,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코로나 외톨이가 되어야 한다.

 7년 전인 2013년에 경험했던 특별한 여름휴가가 떠오른다. 세계 민주주의 지수가 최상위권인 스웨덴에서 7월 첫째 주에 겪은 이야기다. 이 시기는 스웨덴에서 가장 핫한 여름휴가 기간이다. 고틀란드(Gotland) 섬에 있는 비스비(Visby)라는 작은 도시에서 정치축제가 열리는데 그 한 주를 알메달렌 주간(Almedalen Week)이라고 한다. 이 주간 동안에는 숙박시설이 동이 나고 30만 명이 휴가를 온다고 한다. 필자도 여행 3개월 전임에도 숙소를 구할 수 없어 현지인을 통해 겨우 가정집 민박을 예약했던 기억이 있다.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사람들이 수천 개의 부스를 설치하고 부스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한다. 각 부스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주제의 토론이 이뤄진다고 보면 된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해가 질 때면 알메달렌공원에는 휴가를 온 가족과 연인 등이 매트나 모포를 들고 모여든다. 당세가 약한 정당부터 시작해서 매일 저녁 정당의 대표자가 연설을 하고 방송에서는 이를 생중계 한다. 또 내가 낸 세금은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책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지 정치인과 대화하고 토론한다.

 필자는 여름휴가를 이렇게 보낸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는 가고 싶어도 못가는 핫한 여름휴가라니 내겐 충격 그 자체였다. 벌써 50년의 역사를 지녔다고 하니 스웨덴이 왜 민주주의 지수가 최상위 국가인지 그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많이 부러웠다.

  코로나19를 겪은 지 7개월이 지났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일상, 그리고 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지 직간접적으로 체득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 코로나 외톨이를 벗어나는 길이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나라에도 스웨덴과 같은 축제가 있다면 독자 여러분도 흔쾌히 휴가를 낼 수 있을까?

 그 여름 이후 5년이 지나 필자가 선거연수원장으로 있을 때 유권자와 정치인이 만나고, 즐기고, 화합하는 ‘유권자정치페스티벌’을 처음으로 개최하였다. 아마도 특별하게 경험한 여름휴가의 잔상(殘像)이 만들어준 결과물일 것이다. 이 축제는 올해 11월에도 개최된다. 한 번쯤 참여해보면 새로운 경험이 될 듯 싶다.

 이용섭<전북선관위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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