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후손 “대한독립운동 101주년 서훈을”
독립운동가 후손 “대한독립운동 101주년 서훈을”
  • 권순재 기자
  • 승인 2020.08.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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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유공자 추서를 통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에 대한 예우를 다해야 합니다.”

 부안군 상서면 노적마을 고광계 의사의 후손인 고재흠(85)씨는 75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아직 등록되지 못한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공훈 인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고광계 의사는 한학자로써 당시 훈장인 부친 고민상과 모친 안성녀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이 훈장으로 벌어들이는 돈과 농가 소득은 모두 장남인 고광계 의사의 독립운동자금에 쓰였다. 가족들의 생활은 갈수록 곤궁해질 수밖에 없었다.

 ‘광복운동을 하는 집’이라는 소문에 순사가 수시로 들락거리는 등 서슬 퍼런 감시도 받아야했다.

 고재흠 씨는 “당시는 일제강점기라 배고픈 삶은 물론이고 차가 없어 18km가량을 걸어서 조사를 받는 등 가족들 모두가 비극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국내외 광복운동을 벌이던 고광계 의사는 1943년 2월 12일 일제의 집요한 추격을 피하던 중 압록강변 혜산진 한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숨졌다. 당시 그는 광복단에서 활동하며 친분이 두터운 지인의 도움으로 고향인 부안에 가(假)장묘 할 수 있었다.

 고 의사의 헌신과 달리 그와 관련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다. 1950년 한국전쟁의 피해로 마을 500여 가옥이 불길에 휩싸이면서 사진을 비롯해 관련 서류가 대부분 소실된 탓이다.

 일부 남은 문헌은 고 의사가 대한광복단 함경남도 갑산분단 교통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전북연구원 장세윤 연구위원은 지난해 자신의 논문에서 고광계 의사가 대한광복단(1897년~1933년) 연락원의 직책을 맡았다고 정리하고 있다. 고 의사가 1920년 전후 중국 길림성 장백현과 함경남도 혜산진, 고향인 전라도 일원과 국내 지역을 왕래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했다는 내용도 밝히고 있다.

 고재흠 씨는 “한국전쟁 피해로 마을 500여 가옥이 불에 타면서 대한독립운동에 관련한 근거 서류가 모두 소실돼 국가 서훈 절차에 어려움이 매우 크다”면서 “이 같은 상황은 비단 개인 한명에 그치지 않고 대부분의 독립운동 후손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만큼 추서를 통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이들의 예우 향상에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전라도 지역 내 독립유공자는 모두 2276명으로 집계됐다. 보훈처는 후손이 없거나 미추서 등으로 미등록된 유공자가 다수 존재함에 따라 미추서 유공자 서훈사업을 진행, 지자체 등과 연계하거나 개인으로부터 서훈 신청을 접수하고 있다.

권순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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