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위기와 우리의 미래
민주주의의 위기와 우리의 미래
  • 김우영
  • 승인 2020.08.05 16: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0년대 초는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독일의 통일,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동유럽 국가들의 민주화 등 세계적 격변의 시대였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대다수 사람의 반응은 사회주의와 시장경제,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경쟁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세계의 대다수 나라에서 확립된 민주주의 체제가 보편적인 정치 체제로서 견고하게 정착하리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92년 출간된 <역사의 종언>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믿음을 잘 표현하였다. 이 책에서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민주주의 체제와 이에 대항하는 이데올로기, 제도와의 경쟁으로서의 역사는 이미 끝났다고 진단한다. 자유 실현 정체 역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 체제가 궁극적인 제도이며 세계적인 보편 현상으로서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앞으로의 역사는 다른 스토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확립된 민주주의 체제가 지속적인 정치체제로서 잘 작동하리라는 믿음은 30년이 지난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선도국가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조차 민주주의의 위기론이 다양하게 분출되고 있다. 위기론 진단에 따르면, 민주주의 정치 체제는 우리가 생각하듯 그렇게 견고한 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다. 민주주의는 시민 사회의 지지가 없이는 위태로운 제도이며, 언제든 여러 가지 요인으로 쇠퇴와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라는 책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에 의해서 민주주의가 붕괴하는 현상에 주목한다. 민주주의 파괴에서 가장 우려되는 현상은 기성정당과 정치인이 집권을 위해 포퓰리스트, 극단주의자들과 손을 잡고, 그들의 경쟁자들을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고 적대 세력으로 모는 것이다. 이 경우는 반대 정당 역시 같은 과정에 휘말리게 되고, 이것은 정치적 양극화를 가져오고, 정당 정치를 무력화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선출된 지도자는 의회를 우회하여 행정적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여, 심판을 매수하고 비판자와 경쟁자를 탄압하여,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들어 버린다. 심판 매수는 사법부, 검찰, 헌법재판소 등에 공직자나 비우호적 관료들을 해고하고 측근을 임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비판적이고 야당에 우호적인 언론이나 대기업엔, 명예훼손 소송이나 거액의 벌금을 통해서 재갈을 물리고, 선거제도 개정을 통해서 게임의 규칙을 바꾸기도 한다. 합법적 과정을 통해서도 민주주의는 시민이 모르는 사이 쉽게 붕괴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세계 여러 나라의 경우 매우 유사한 과정을 통해 민주주주의가 무너졌음을 발견하였고, 미국에서도 민주당과 공화당이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고 있고, 일부 지역에서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한다. 민주주의를 지탱해 온 것은 균형과 견제를 위해 잘 설계된 헌법 체계가 기반이지만, 헌법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킬 수 없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오히려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들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이다.

 ‘상호 관용’은 자신과 다른 집단과 의견도 인정하는 정치인들의 집단 의지이며, ‘제도적 자제’는 주어진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는 당연한 것 같지만, 다원주의 가치를 지지하는 민주주의가 가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가장 근본적인 규범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규범이 파괴된다면 정치적 양극화와 극단적 대립을 피할 수 없다. 정치인들의 이러한 사회적 규범들의 무시는 곧 민주주의의 위험 신호를 나타낸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역시, <트러스트>라는 책에서 그가 앞서 지지하였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가 지속하기 위해서는 윤리, 도덕, 관습과 같은 규범이 잘 작동함으로써 사회적 신뢰가 유지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정치적 사회적 적대의 해소와 신뢰 회복은 사회 내 심화하고 있는, 사회 경제적 영역에서의 양극화와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이 없이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로 보인다.

 김우영<전주교육대학교 총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