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8) 전기철 시인의 ‘종착역’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8) 전기철 시인의 ‘종착역’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0.08.09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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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착역


 - 전기철

 

한 꽃송이가 있습니다.

한 꽃송이는 추운 대합실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습니다

한 꽃송이만이 오지 않는

다른 꽃송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두들 어디론가 떠나버린 대합실에서

한 꽃송이만이 제 몸으로 불을 피우며 기다립니다.

기차가 몇 번 들어왔지만

한 꽃송이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윽고

막차가 들어옵니다.

우산처럼 안내방송이 펼쳐지고

외국어로 칙칙 이던 기차가 잠들 때까지도

한 꽃송이는

밤새 불을 끄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설>  

 종착역은 어느 누구에게는 출발점이 되는 곳입니다. 윤대성의 희곡 작품 「출발」의 배경은 종착역이자 출발점인 역에서 사내와 역원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내는 시계도 없이 종착역에 누워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상주의자로서, 저 너머에 무엇인가를 찾으러 떠났다가 실패하고 돌아온 인물입니다. 역원은 현실주의자로서 사내가 자신의 여자(마리아)를 따라 죽으면, 죽은 뒤 하나가 될까봐, 사내의 죽음을 막으려고 합니다. 사내가 먼저 기찻길에 들어서자 밀쳐내고 마리아를 끝까지 독점하기 위해 먼저 자신이 죽음을 선택합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순환열차처럼 인생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사내는 사랑했던 마리아를 두고 떠난 것을 후회하며 종착역으로 돌아왔고, 마리아 또한 기차역에서 사내가 돌아오리라는 자신의 신념을 믿고 한 송이 꽃으로 피었다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지게 됩니다.
 

 이 시는 모든 사람들이 어디론가 떠나버린 텅 빈 대합실에서 한 꽃송이만이 제 몸으로 불을 피우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차가 몇 번이나 들어왔고, 겨울은 밤이 빨리 찾아오고 한 꽃송이만이 종착역에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그 긴 기다림은 기약이 없는 기다림일지도 모릅니다. 사내처럼 꿈을 찾아 떠났다가 돌아 와서 마리아를 기다리는 기다림이거나 아니면 집을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기다림 일 수도 있습니다. 기다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또 다른 종착역이자 출발점입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그리움이요, 사랑이요, 꿈입니다. 그러고 보니 긴 겨울은 누군가를 기다리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강민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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