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7) 김진수 시인의 ‘범종소리’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7) 김진수 시인의 ‘범종소리’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0.08.0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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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종소리

  - 김진수

 
 

 울음 멈춘다

 안으로 응축되었던

 소(牛)의 울음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일순,

 입 다물었던 소리란 소리들,

 수행하다 그 자리에 멈추어 섰던

 달마산 바위미륵들,

 순례 온 낙엽 서넛,

 탑을 돌며 합장한 말씀 듣는다

 흐르고 굽이치는,

 내내 귓속에서 맴도는

 ‘남 해코지 말고 살어, 선한 끝은 있는 거여’

 가끔은

 발가락 사이 티눈 같았던

 끝 모를 소리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시던

 어머니, 너무 멀리 왔습니다

 

 더는 멀어지지 말라고 한 번 더 이르는

 종소리 멎는다

 

 <해설>  

 종소리만큼 오래 멀리 가는 소리도 없는 듯 합니다. 산사에서 범종이 울리면 30리 까지 간다고 하니, 맑은 종소리는 그토록 멀리 가나 봅니다.

 종소리만큼 맑고 기분이 좋아지는 소리가 또 있을까요? 담이 제아무리 높아도 마당에 피어난 꽃향기를 막을 수 없듯이, 종소리를 가슴 깊이 담아 본 사람은 정신까지 맑게 해 주는 오묘한 기운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종소리는 다양한 정도를 넘어 신비한 경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 사람이 같은 기술로 종을 만들어도 저마다 소리가 다르고, 그날의 날씨와 녹인 쇳물을 부어넣는 속도에 따라서도 소리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심지어 종에 새겨 넣는 문양(紋樣)의 배열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하니, 사람의 숨결마저 멎게 하는 오묘한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얼마나 정성된 담금질해야 할까요.

 언제부터인가, 종소리의 매력에 끌려서 세계 곳곳을 다니며 사 모은 종만 해도 육 십 여 개가 넘습니다. 산사의 종소리만큼은 아니어도 그 종소리는 저마다 다른 목소리로 울음을 냅니다.

 시인은 웅장한 산사의 범종소리를 황소울음이라고 표현 했네요. 종소리를 들으면서 돌아가신 어머니가 살아생전에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거예요. “남 해코지 말고 살어, 선한 끝은 있는 거여.” 하지만 시인 자신도 세파에 휩쓸려 살다보니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아야했던 행동에 대해, 스스로 합리화시켰던 삶이 ‘발가락 사이 티눈’처럼 쓰리고 아팠다고 고백하네요.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살아보려고 했지만 너무 멀리 왔다고 탑을 돌며 성찰하는 시인의 모습이 경건해 보입니다. 어머니는 산사를 찾은 자식에게 종소리에 담아 다시 타이릅니다. “남 해코지 하지 말고 선하게 살아가라.”고.

 

강민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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