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부초’의 정치적 신 사자성어
‘서천부초’의 정치적 신 사자성어
  • 이복웅
  • 승인 2020.07.29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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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정치권에서는 신 사자성어인 ‘서천부초’를 놓고 뜨거운 공방을 벌이고 있다. 사자성어는 원래 4글자로 이루어진 함축 된 고사성어를 일컬은 말이다.

 흔히 중국의 역사와 시가 등 옛 이야기에서 유래하여 내려온 고사성어라고도 한다. 그러나 사자성어 모두가 중국에서만 유래한 것이 아니라 한자 문화권 즉 한국, 일본 등에서도 유래 되고 있다. 또한 우리의 속담에서 유래하여 한자로 조합된 사자성어도 있다. 사자성어는 교훈이나 비유 또는 상징 등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에 일상생활 속에서 그리고 대화 속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일 예로 ‘타산지석’ ‘유비무환’ ‘십시일반’ ‘오비이락’ 등 많은 사자성어가 일상으로 쓰이고 있다 근래 와서는 정치적 상황이나 사회상을 빗대어 풍자적으로 유행하는 사자성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자성어는 오늘날 정치적 환경과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각오를 사자성어를 활용해 알리고 정치적 파급력을 확보하려는 정치적 기술로 이용되고 있다. 정치권의 사자성어는 주로 연말연시에 자주 볼 수 있는데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매년 올해의 화두에서 사자성어의 한자어를 내 놓았다. 이러한 정치권의 사자성어는 정치권 전역으로 확산되어 여·야는 물론 웬만한 중진까지 경쟁적으로 사자성어를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풍조는 지방자치단체에까지 크게 번져 대부분 설명을 붙이지 않으면 알아듣기 힘든 것들을 사자성어로 내놓는 경우가 많아 지역민의 빈축을 사기도 한다.

 사자성어는 잘 사용하면 공감을 일으키지만 이미 쉽게 전달될 수 있는 사자성어는 대부분 사용했으므로 다소 어려워야 사자성어의 깊은 뜻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본인도 잘 이해 되지 않는 한자성어를 끄집어내 사자성어는 갈수록 난해해지고 있다.

 지난 24일 이해찬 더불어 민주당 대표가 서울을 천박한 도시에 비유해 정치권에서 크게 논란이 되고 있다. 이날 이 대표는 세종시청에서 열린 ‘세종시의 미래’라는 특강에서 “서울 한강변을 배를 타고 지나가면 저기는 무슨 아파트 한 평에 얼마 조금 또 지나가면 저기는 무슨 아파트 한 평에 얼마, 이걸 쭉 설명해야 돼요. 갔다가 올 때도 반대편 저기는 무슨 아파트, 아파트 설명밖에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한강변에 맨 아파트만 들어서 가지고 저기는 몇 평짜리 이런 천박한 도시 만들면 안되거든요” 라고 말했다.

 또한 지난 4월 총선 때는 부산에서 열린 선거 대책위원회에서 이 대표는 “부산에 올 때마다 매번 느끼는데 왜 교통체증이 많이 있을까? 도시가 왜 이렇게 초라할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야당에서는 이 대표의 발언을 문제 삼아 정치적으로 해석시키려는 신 사자성어를 조합하여 “서울은 천박한 도시고” “부산은 초라한 도시”로 부각시켜 서울의 첫 자인 서와 천박한 도시의 천자를 조합 ‘서천’이라 하고 부산의 첫 자인 부자와 초라한 도시의 초자를 취음하여 신사자성어인 ‘서천부초’라는 정치적 해석을 달아 서울과 부산 시민들 그리고 국민 앞에 사과하라며 여당의 대표 발언을 문제 삼아 정치적으로 맹공을 퍼붓었다.

 본래 사자성어는 전래하여 오는 한자성어로서 일상생활에 밀접한 교훈이고 감동을 얻자 명언으로 전해 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신년초에 대통령을 비롯하여 지자체 단체장에 이르기까지 사자성어를 들어 교훈과 덕담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서면서 사자성어는 정치권에서 자당의 이익 위하여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특히 염려스러운 것은 본래의 사자성어의 취지를 벗어나 당리당략 차원으로 쓰이고 있다.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번 ‘서천부초’의 사자성어에 대한 야당 공세를 나무라기 전에 집권여당의 대표로서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발언은 간결하고 명확 해야 하며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감 없는 품격 있는 언어로 정제되어 나오는 말이어야 한다 야당이나 기자들의 질문에 본인의 뜻과 거리가 있다고 하여 욱하는 격한 감정을 보여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집권여당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야당 또한 정치적으로 꼬집어 해석하려는 신 사자성어를 조합하고 이를 이용하여 정치 공세를 펼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못하다.

 사자성어는 소통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며 서로 이해하며 말을 주고받는 것, 내 주장에 위엄을 얻지 않는 것, 내가 말하면 그리 알라는 식의 일방적 통보는 소통이 아니다. 따라서 해석이 필요한 사자성어는 소통의 장애가 될 뿐이다. 서로 다른 사람에게 자기중심적 ‘자화자찬’이나 ‘금시초문’이라는 사자성어는 금물일 뿐이다. 오늘의 정치권에서도 여·야 모두가 새겨 들어야 할 사자성어의 교훈이다.

 이복웅<(사)군산역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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