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 호수로 간 금강선녀
바이칼 호수로 간 금강선녀
  • 신재순 시인
  • 승인 2020.07.28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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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곡의 노래는 엽서 같아서]<20>

  “내 옷은 어데로 갔나. 그 누가 가져갔나. 오늘도 올라가야 내일부터 베를 짜는데~”

  아는 이들만 알고 부르는 노래 <금강선녀>의 처음 노랫말이다. 바이칼 호수로 가는 도중 러시아 어느 산자락에서 우리는 이 노래를 불렀다. 영화평론을 하는 S가 금강선녀를 처음 알려준 이처럼 불렀다. 소설을 쓰는 L을 비롯해 함께 간 이들이 모두 잘 불렀다.

  이 노래를 알려준 이는 이광웅 시인이라고 했다. 나로선 군산 금강하구둑 시비를 통해 알게 된 이름이었다. “이 땅에서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 뭐든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시비의 한 구절이다. 선생이었던 나는 이 시를 볼 때마다 이분이 대체 누구인지 궁금해하곤 했다. 이광웅 선생님은 제일고에 근무하던 시절, 함께 근무하던 다른 4명과 함께 오송회(五松會)를 만들어 말도 안 돼는 반국가적인 일을 도모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어 모진 옥고를 치르신 분이다. 이때 수감되었던 이광웅 시인이 그곳 장기수로부터 배워 불렀다는 노래가 <금강선녀>다. 출옥 후 시인이 이 노래를 불렀을 당시에는 <백두산 안 갑니다>를 쓴 故 박배엽 시인도 즐겨 불렀다고 했다. 작년 북·중접경지역을 탐방하던 중 백두산에 오르기 전날 밤, 나는 연수단 일행 차 안에서 <백두산 안 갑니다>를 낭송하여 아이러니를 자아낸 적이 있었다. 통일되기 전에 다른 나라 땅을 밟고 가는 백두산은 절대 안 가겠다는 시 구절을 읊었으나 이튿날 다른 나라 땅을 밟고 백두산에 올랐으니 말이다.

  한 발만 훌쩍 뛰어넘으면 북녘땅이 지척이었던 북·중접경지역에서 나는 하필 왜 이 노래 <금강선녀>가 생각났던가. 누가 들을세라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혼자서 음을 짚어갔다. 동화적인 가사에 붙여진 곡은 애잔하게 흥얼거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대학원 동기였던 작가 L이 건넨 ‘바이칼에 가자’는 한 마디에 나는 그동안 내린 모든 결정 중 가장 짧은 시간 답을 했다. 가자. 그렇게 꾸려진 우리 일행은 그해 8월 바이칼에 갔다. 러시아는 처음이었으나 이르쿠츠크 작은 공항부터 시작하여 만나는 모든 풍경과 사람들이 오랜 지기 같았다. 바이칼 순환 열차를 타고 달리는 내내 잔잔한 바이칼 호수 주변으로 들꽃과 나무가 태초인 듯 풍요로웠다. 곳곳에서 우리를 안아주었던 자작나무 숲은 내 숨구멍이 돼주었다. 우리는 겨우 하루쯤 기차를 타고 달렸을 테지만 기차가 가는 길은 끝이 날 줄을 몰랐다. 러시아어로만 쉴새 없이 들려오는 안내방송은 불친절했다. 쉬어가는 역에서는 호수 주변을 걸었다. 가을날처럼 스산한 바람에 옷깃을 감싸 쥐기도 했다. 그러다 기차에서 벗어난 우리는 바이칼 호수에 입수했다. 손을 담그면 5년, 얼굴을 씻으면 10년, 몸을 담그면 30년이 젊어진다는 바이칼 호수 속설을 믿어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바이칼에 금강선녀가 있었다.

  바이칼 호수에 다녀온 다음 해 나는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바이칼 호수>로 당선이 되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당선 취소 결정이 났다. 이유는 몇 개월 직전 다른 문학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신인이 아닌 기성작가여서 응모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취소 직후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으나 나는 그리 크게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내 시가 그렇게 묻히게 된 것이 아쉽긴 하였으나 그보다 내가 바이칼에서 함께 한 이들과의 추억과 그때 함께 불렀던 이 노래 <금강선녀>는 언제까지나 내게 아주 특별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선녀는 옷을 잃고 울면서 보낸다오. 이 일을 어이하랴. 옥황님, 나는 못 가오.” 하고 끝나는 노랫말과 곡에 깃든 페이소스가 내겐 컸다. 내가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이들은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이 노래를 불렀다. 혼자 불렀고, 또 누군가가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그러다 모두가 함께 불렀다. 그 심연의 깊이와 넓이를 내 주제로는 가늠해볼 수 없는 바이칼 호수처럼 금강선녀 노래 한 곡도 내겐 바이칼 호수와 백두산과 이병천 작가의 <북쪽녀자>와 동의어로 읽힌다. 다만 내가, 아는 이들만 알고 부르는 이 노래 <금강선녀>를 조심스럽게 언급하는 것은 <금강선녀>가 또 누군가의 깊이 있는 언어로 엮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러는 동안에도 여전히 아는 이들은 또 그들만 알고 부르는 이 노래를 혼자서, 따라서 또 다 같이 부르고 있을 것이다.

 

 글 = 신재순 시인

 

 ◆신재순 시인

 2013년 천강문학상 대상으로 등단하여 동시를 쓴다. 전북아동문학회, 전북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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