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얼굴] <60> 朴甲根씨(박갑근)...목발의 노래 연출자
[자랑스런 얼굴] <60> 朴甲根씨(박갑근)...목발의 노래 연출자
  • 김재춘 기자
  • 승인 2020.07.26 2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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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군의 애환담긴 농악 맥이어

  사라져 가는 우리 고유의 農謠(농요)를 재연 시키고 선조 농군들이 즐겨 부르던 木발의 노래를 傳授(전수)시키는데 일새을 몸바쳐온 朴甲根씨(박갑근·68·익산군 삼계면 검지마을).

 원래 “木발의 노래는 판소리와는 다르지요. 판소리는 이조 영조 이후 劇的으로된 노래를 가곡화 하여 광대나 몸짓으로 노래를 하는 것이지만 木발의 노래는 순수한 선조 농군들의 한맺힌 설움과 고달픔을 노래로 달래주는 자발적인 민요입니다. 그래서 노래 가사도 보면 지게를 맏쳐주는 木발의 노래·등짐노래·작대기타령 등 주로 지게를 중심으로 한 힘겨운 농사일을 소재로 삼은 이 農謠는 논파기 모심기 등 즉흥적인 경우가 각각 다른점을 보이고 잇씁니다”고 유래를 설명한다.

 지난 1977년 전국 문화예술행사에 출전 익산 ‘木발의 노래’를 연출해 국무총리상을 받은 朴씨는 지난 1973년 부터 현장소인 익산군 삼계면 검지마을에 郡의 지원을 얻어 대지 370평에 전수관인 농요회관을 건립, 회원 40명을 모아 잊혀져 가는 ‘木발의 노래’보급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어릴적부터 농촌에서 자란 朴씨는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틈틈이 선조들이 부르는 木발의 노래를 익혀왔고 “지금도 하늘을 보며 그때의 모습을 재연하려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회상한다.

 “당국이 좀 더 많은 지원을 해서 우리 문화 예술의 밑거름이 되는 판소리처럼 훌륭한 전수자가 많이 배출되었으면 더이상 바랄게 없다”고 지난날의 자신의 노력의 결실이 적음을 안타까워 했다.

 글 박한용·사진 김영호
 옮긴이 김재춘
 1989년 2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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