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81>차는 군자와 같다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81>차는 군자와 같다
  • 이창숙 원광대 초빙교수
  • 승인 2020.07.2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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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 전경

 이웃집 밭에서 어린 종이 호박을 훔쳐 음식을 만들자 부인 홍씨가 이를 나무라고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이를 만류하는 젊은 날의 이야기가 있다. 다산이 23세(1784년)때 지은 <호박을 한탄함>이라는 시이다. 성균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계집종이 부인 홍씨에게 혼이 나고 있는 광경을 보고 쓴 시이다.

 

  장마비 열흘 만에 길은 끊기고 성안도 시골도 밥 짓는 연기 사라졌네.

  성균관에서 집에 돌아오니 문에 들어서자 시끄럽게 야단났네.

  들어보니 며칠 전 끼니가 떨어져 호박으로 죽을 쑤어 배를 채웠는데.

  어린 호박 다 땄으니 이 일을 어찌하나, 늦은 꽃 지지 않아 아직 열매 맺지 않았네.

  옆집 밭의 항아리만큼 큰 호박 보고 계집종이 슬그머니 가져와

  충성을 다했으나 도리어 혼이나네.

  오, 죄 없는 아이에게 화를 그만 내시게, 이 호박은 내가 먹을 터이니,

  더 이상 말하지 말고 밭 주인에게 나를 위해 사실대로 말해주소.

  오릉의 작은 청렴 나는 싫어한다오. 나도 때를 만나면 높이 날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금광 찾아가리라. 만권 서적 읽었다고 아내가 어찌 배부를까.

  밭 두뙈기만 있어도 계집종 죄 안 지었을 것을.

 

  참으로 어려운 광경을 해학으로 잘 풀어낸 시이다. 모든 상황이 자신으로 인해 일어난 것으로 자신을 꾸짖고 있다. 훔친 호박으로 쑤운 죽은 자신에게 달라는 다산의 마음은 청빈함보다는 훔친이의 마음을 이해 하고자 함이 담겨있어 더욱 다산을 느끼게 한다.

  배고프면 먹고 싶고, 추우면 따뜻하고 싶고, 힘들면 쉬고 싶고, 이익을 좋아하고 손해보길 싫어하는 것은 사람에게 공통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물질적 현상에 휘들리지 않고 삶을 살아가기란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특히 지금의 사회는 물질이 마음을 앞서다 보니 인간의 본성을 논하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누구나 쉽게 이해되는 대목이다.

  순자는 사람이 태어나 외부 환경과 접촉하면서 일생을 살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접촉을 통해 투쟁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했다.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을 본 것이다. 이러한 외부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것이 소위 군자라 했다. “쑥이 삼밭 가운데 나면 붙들어주지 않아도 곧게 자라고 하얀 모래가 갯벌과 섞이면 다 함께 검어진다. 구릿대의 뿌리가 한약재 이지만 그것에 오물이 묻으면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다”이는 순자의 「권학」 편에 나오는 글이다. 그래서 군자는 살 곳을 잘 선택하여 살고 놀러 갈 때도 반드시 올곧은 이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선택이 사람이 그릇되고 치우친 길로 가는 것을 방지하고 바른 길로 가는 것으로 군자가 되는 길이라 제시한 것이다.

  지금 시대의 군자란 누구일까. 시대의 거리 만큼 멀리있는 것이 아니며 특정한 지위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우리 모두가 지향하는 모습이다.

  “옛부터 성현들은 모두 차를 즐겼으니 차는 군자와 같아 그 성미가 삿됨이 없다네(古來聖賢俱愛茶 茶如君子性無邪)”라는 글은 한국의 다성(茶聖) 초의선사(1786∼1866)가 추사 김정희의 동생 산천 김명희(山泉 金命喜, 1788∼1857)에게 보낸 다시(茶詩)의 내용이다. 산천 김명희의 <초의 차를 보내주어 감사하며>에 대해 화답한 시이다. 김명희는 초의에게 차를 받고 감사한 뜻으로 평소 차를 좋아하지 않아 학질에 걸려 더워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목말라 죽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내용 등 초의 차를 반기는 시를 보낸다. 그는 중국의 차는 조악하여 먹을 수가 없는데, 초의 차는 노스님 차 고르기를 마치 부처님 고르듯하여 바라밀의 경지에 들게 하였음을 예찬한다. 이 모두 서로의 입장에서 차를 바라보고 있으니 이것이 소통이 아니겠는가.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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