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전북문학기행> 10. 순창군 동계면을 감싸는 오수천을 따라서 피어나는 감수성의 씨앗
<2020전북문학기행> 10. 순창군 동계면을 감싸는 오수천을 따라서 피어나는 감수성의 씨앗
  • 이휘빈 기자
  • 승인 2020.07.2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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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군 신흥리에서 자란 박송이 시인, “내 감수성의 씨앗이 싹튼 곳”
외가집이자 유년시절의 기억, 현재 시인 속에서 다시 피어나

 순창군 동계면을 감싸는 오수천은 장마 속에서 거센 물살로 여름을 겪고 있었다. 오수천의 수풀 사이에서는 벌레와 개구리 우는 소리들이 피었고, 햇살과 빗물을 힘껏 머금은 녹색 잎사귀들은 바람 속에서도 꿋꿋하다. 어둑한 색과 하늘색을 번갈아 입는 하늘 아래 거세게 지저귀는 오수천을 바라보며, 이 곳에서 자란 박송이 시인의 시집 ‘조용한 심장’의 문장들을 생각했다.

 박 시인은 인천에서 나고 순창에서 자랐다고 책 앞에서 스스로를 소개했다. 시인의 모든 시가 순창과 인천을 소재로 한 것은 아니지만 시 ‘피어올라야 꽃이라지만’은 시인이 스스로 순창에 계시던 조부와 조모를 소재로 썼다고 밝혔다.

 ‘울 할매가 죽기 전에 / 제 꽃 한번 피워보려 / 종아리에 괴저병을 / 허벅지에 곰팡이를 / 피우는 거였습니다’라고 말한 시인의 말은 언뜻 보면 할머니의 괴저병을 꽃으로 묘사하는 듯 싶다. 그러나 마지막 연에서 ‘자목련 꽃봉오리 / 앙다문 꽃방마다 / 울화통이 한창인가 싶었습니다’라는 비유에서, 시인은 할머니의 인생과 자목련의 꽃방의 부풀어오름을 발견하고 있다. 시인은 순창의 외가댁 자목련에서 이 아름다움을 소재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시 ‘오래 취한 소리’에서도 시인의 고향 모습이 넌즈시 드러난다. ‘주월리 하천엔 올해도 울음통 꺼내 씻는 소리’라는 직접적인 지명으로 나온다. ‘하천히 흑빛으로 허물 벗는 / 오래 취한 소리’에서 오수천은 끊임없는 고통을 적어 흘려보내는 것처럼 묘사된다.

 시인에게 순창은 어머니가 나고 자란 곳이자 시인이 대여섯살 쯤 때부터 유년의 시작을 옮긴 지역이기도 하다. 시인은 “무량산 지켜주는 포근한 터에서 시적 감수성을 키웠다. 무량산 능선은 마치 임신한 여자가 누워있는 형상이다”며 “전주에서는 모악산이 유명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순창에 그만큼 높은 산이 없었다. 저는 이런 낮고 넓고 푸르고 초록인 정경을 품은 채 성장했다”고 말했다. 시인은 이어 “이러한 시골 삶이 제 인생에 없었더라면 생태적 감수성을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 순창은 내 문학의 씨앗이다”고 덧붙였다.

 그래서였을까, 시인의 글에서 나오는 말들은 낯선 어려움이 아닌, 가까운 것들에 대한 속깊은 애정이었다. 이는 순창군에서 살아가는 인정(人情)과 닮아있었다. 시인은 시를 쓰고 싶은 순간에 대해 “매순간 시의 지점을 포착하고 품으려고 한다.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면서, 미납된 공과금 용지를 보면서, 아침마다 마주치는 아파트 관리실 아저씨의 낡은 자전거 핸들을 보면서, 상자에 넣어 두고 오랫동안 꺼내 보지 않은 상한 양파를 도려내면서... 그런 사소한 상태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시는 시는 우리 삶의 반영이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순창에 대해서 더욱 작품을 쓰겠다고 다짐한 시인의 말을 생각하며, 배재교에서 오수천의 소리에 귀기울였다. 오수천은 따복따복 섬진강이 되어가고, 박송이 시인은 첫 시집으로 문단에 물길을 텄는데, 이 감수성이 강과 바다가 되는 모습을 녹색 잎사귀들 사이서 어른거렸다.

이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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