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이 그리운 더운날
얼음이 그리운 더운날
  • 진영란
  • 승인 2020.07.2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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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불 덮어주기, 상추 샐러드’

 “아이구, 밭에 난 저 풀들을 다 어쩐대요? 저 밭 좀 어떻게 좀 해 봐요.”

 우리 학교의 ‘경관’을 담당하시는 주사님이 밭에 나는 풀 때문에 고민이 많으시다.

 지난주에 덮어준 파쇄목 이불이 얇아서인지, 우리 밭 땅심이 좋아서인지, 밭에 풀씨를 뿌려 따로 가꾼 것처럼 파랗다. 온 밭을 다 집어삼킬 기세다.

 그 속에서도 상추랑 씨 뿌려 놓은 봉숭아는 쑥쑥 자라는데, 모종으로 심은 다른 작물이 시원찮다. 자연농에서는 풀과 작물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하는 친구라고 배웠는데, 어르신들이 조그만 풀도 꼴을 보지 못하시는 그 마음에 격하게 동의가 되는 요즘이다.

 

 오늘은 풀과의 ‘전쟁’이다. 우리 농부님께서는 “풀을 잡아먹는다.”고 하시던데, 난 풀이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우리 텃밭이 달라진 것이 뭘까요?”“콩이 났어요.”, “풀이 많아요.”, “벽돌을 쌓았어요.”

 “풀이 많아졌죠? 이 풀을 오늘 잘 베어서 작물들에게 폭신하게 이불을 덮어줄 거예요.”

 교실에 모여서 풀이 왜 필요한지, 풀을 잘 베어서 풀이불을 덮어주면 작물들에게 어떤 점이 이로운지에 대해 공부했다. 풀의 생장점을 닥닥 긁어서 작물 옆에 가만히 덮어주면 밭에 물기를 잡아줘서 가뭄도 타지 않고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면 좋은 영양분이 되어주기도 한단다. 풀을 작물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배운 우리 아이들은 잡초를 보면 불면증이 생기는 편견의 고리들이 생기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다.

 “오늘 모판을 나르고 오느라 너무 힘들어요.” 농부님의 한마디에 아이들의 관심사가 모로 옮아갔다. 다음 주에는 틀밭 빈 곳에 밭벼를 심을 계획이다. 벼의 한 살이도 공부해야 하니까 말이다. 벼를 부르는 여러 가지 이름에 대해 말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모모모모모’라는 책으로 벼의 한 살이를 경헌한 터라 척척 잘도 알아맞힌다.

 

 가위를 하나씩 들고, 유치원 놀이터에 모였다. 둥글게 서서 상대방의 이름을 말하면서 인형 던지고 받기 놀이를 했다. 아직 1학년은 인형을 던지는 것도 서툴다. 그래도 재미난 지 열심히 한다.  

 장갑을 끼고, 그늘진 밭의 가장자리에 앉아서 흙속으로 가위를 살짝 집어넣어 풀의 생장점을 잘랐다. 우리 아이들은 아직 가위질이 서툴러서 풀을 다듬어주는 수준이다. 2학년은 제법 풀을 잘 자른다. 텃밭에 찾아오는 곤충들을 보다가, 개미집도 관찰하다가, 풀도 베고, 모여서 수다도 떤다. 그래도 아이들 손이 무섭다. 울창하던 풀밭이 정리가 된 듯 하다.

 

 텃밭 농사는 뭐니뭐니해도 먹는 재미를 빼놓을 수가 없다. 심어놓은 작물들 중에 상추가 제일 쓸만하다. 2학년 선생님이랑 상의해서 상추샐러드를 먹기로 했다. 1묶음이 끝나갈 즈음, 아이들에게 상추 따는 법을 가르쳐 주고 상추를 3장씩 따 보았다. 상추가 여리고 작아서 뿌리째 뽑힐까봐 상추 따는 손길이 조심스럽다. 상추는 바로 씻어서 생협에서 사온 발사믹드레싱과 깨드레싱을 뿌려서 맛을 보았다. 텃밭에서 방금 따온 신선한 상추로 만든 샐러드는 그 어느 것보다 영양가가 높고 맛나다. 우리 아이들은 2~3번씩 샐러드를 다시 가져다가 먹었다. 토핑도 없는 상추로만 된 샐러드를 맛나게 먹고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니 텃밭에서 흘린 땀이 아깝지 않았다.

 

 맛나게 샐러드를 먹고 상추를 한 장씩 가지고 와서 그리기 노트를 펼쳤다. 상추를 대고 선을 땄다. 상추 잎맥을 해가 비치는 교실 창문에 대 보았더니 선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아이들은 각자 자기 상추의 잎맥을 관찰하면서 선을 그려 넣었다. 처음에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던 상추그림이 제법 섬세해 졌다. 72색 색연필을 펼쳐놓고 단조로울 것 같았던 상춧잎의 다채로운 색을 찾아서 칠했다. 칠하기 전에 라인펜으로 선도 땄는데, 아이들이 제법 섬세하게 잘 그렸다. 각자 상춧잎을 보면서 남기고 싶은 문장을 한 개씩 써서 멋진 그림을 완성했다.

 텃밭교육은 정말 풍요롭고 아름답다. 멋진 배움이었다.

 

 진영란 장승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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