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잊은 지방자치
부끄러움을 잊은 지방자치
  • 이흥래
  • 승인 2020.07.21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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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룩도 낯짝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툭하면 패거리 문화에 줄서기며 금품수수설 등 온갖 추문에 물든 지방의원들에겐 이 말도 그다지 소용이 없는 듯하다. 지역주민들의 공식적인 선거를 통해 당선된 영광된 신분의 의원님들에게 어찌 이런 평가를 하게 됐는지는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선량하고 자신의 능력껏 의정활동을 하는 분들까지도 싸잡아서 욕하는 것 같아 대단히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작금의 벌어지는 지방의회의 온갖 행태를 보면 이런 지적조차도 보태기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어언 30년이 다 됐지만 아직도 이런 모양이 다반사이고 보니 이런 지방자치제를 계속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아마 전국의 지방의회를 해체하자는 국민청원이 올라온다면 그 결과는 어떠할까.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는 DJ가 군사독재정권과의 끈질긴 투쟁 속에서 얻어낸 고귀한 정치제도이다. 하지만 오늘날 벌어지는 이 해괴한 모습의 지방자치를 지하에서 DJ가 보고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참담한 노릇이다. 얼마전에 치러진 제8대 후반기 지방의회의 여러 감투를 차지하려고 벌어졌던 추한 모습은 전국 어디나 대부분 비슷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전북지역 지방의회의 이러저러한 추문은 도민들이 낯을 들고다니지 못할 정도였다. 여러곳이 있지만 단연 하이라이트는 김제시의회의 모습이었다.

 죽을 만큼 사랑하고,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죽어서도 사랑하겠다. 이 글만 보면 사랑도 이런 고귀한 사랑이 어디 있을까 생각할 듯하다. 하지만 이 글은 사랑에 지친 나머지 의회 회의장에서 불륜의 당사자로 서로 욕설을 해댄 남녀 의원이 주고받은 편지 글이라고 한다. 이런 지고지순한 마음을 지녔던 두 사람이 어찌해서 불륜의 당사자라는 오명과 비판을 받게 됐을까. 이런 결과로 파문의 한 당사자는 그 지역 지방의원 가운데서는 최초로 제명됐고, 또 한 사람 역시 징계의 문턱에 와 있다고 한다. 의회 의원들도 사람인지라 사랑할 수도 있고 결혼할 수도 있을 수 있다. 이미 국회의원들끼리도 의사당에서 만나 재혼한 전례가 있으니 이들의 사랑(?)을 처음부터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앞서 얘기한대로 이들은 지역주민들의 선택을 받아 선출된 공인들이다. 따라서 도덕적 책임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최소한의 공인의 역할에 맞는, 사회적 법률적 처신 정도는 했어야 했다. 물론 작금에 벌어졌던 유명 정치인들의 행태에서도 드러났듯, 사랑(?)에 눈이 멀면 윤리의식이나 공인의식도 같이 눈이 멀어서 일까. 보도에 따르면 제명된 의원은 불륜을 고백하는 기자회견도 했지만 다른 한 사람은 아직도 부적절한 사이가 아니었다는 입장만 보이며 의장단 선거에까지 참여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이들의 신속한 제명을 촉구하는 청와대 청원까지 나왔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이렇게까지 됐을까. 어떤 이는 불륜이 배신, 폭행, 협박, 고소로 이어지는 전라도식 막장 드라마라고 비웃고 있다. 또 어떤 이는 혈세로 떠난 해외연수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국민이 만든 기막힌 연인이라며 낄낄대고 있다. 이들의 파렴치한 행각때문에 전국 최대의 곡창지역은 눈이 한 개 달린 도깨비들만 사는 이상스런 지역으로 폄하되고 있으니 주민들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불같았던 사랑도 소싯적에 헤어지면 애틋함이라도 남아 있지만 나이들어 맺어진 사랑의 상당수는 쾌락의 탐닉뿐이라. 헤어질 즈음이면 패고 싸우고 집안 망신에 교도소행까지 온갖 사단이 나게 마련인걸 아직도 몰랐단 말인가.

 동냥벼슬이라도 해보려고 선거철엔 절절히 고개를 수그리지만 당선된 후에는 여전히 기고만장한 선거직들이 우리 주변엔 너무도 많다. 누가 말했듯이 논두렁 정기라도 받은 잘난 사람이니 고개를 세울 만도 할 터이다. 하지만 그를 뽑아준 사람들은 그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이며 소싯적에 뭘하고 다녔는지, 또 누구 뒤치다꺼리 해대면서 의원이 됐는지 소상히 알고 있다. 그런데도 자신이 마치 대단한 능력자인 것처럼 주민들을 무시하지는 말기 바란다. 지방의회 의원이니 당연히 조례제정을 위한 발의 정도는 해야 하지만 제 힘으로 조례안 발의라도 할 수 있는 의원님은 몇 분이나 되실까. 이런저런 사정때문에 출마하지 않은 능력자들이 지금 난장판인 지방의회를 지켜보며 출마를 벼를 줄 모를 일이다. 도내 지방의회의 모습들이 이 모양인데도 책임있는 정당의 사과가 있었다는 얘기는 아직도 들은 바가 없다.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지방자치와 지방정치이다.

 이흥래<前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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