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을 추모하며
6.25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을 추모하며
  • 김종하
  • 승인 2020.07.21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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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영웅 백선엽 예비역대장이 지난 7월 10일 향년 100세로 영면(永眠)했다. 고 백 장군의 장례는 15일 대한민국 국군장(國軍葬)으로 엄수됐고, 마지막 가는 수의(壽衣)마저도 6.25전쟁 때의 입었던 전투복(戰鬪服)으로 입은 채 대전 현충원에 안장영면에 들었다. 송영근 예비역 중장의 추도사에 (고 백 장군을)“국장(國葬)으로 서울 현충원에 당연히 모셔져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매우 안타깝다”고했다.

  6일간의 추모기간 중 서울대병원과 광화문광장의 시민분향소에는 장마 빗속에도 조문행렬이 연이어져 1시간씩 대기하면서 까지 1백여만 명을 헤아렸고, 추모물결은 전국 각 지역에서도 이어졌다. 한편 미국 백악관안보회의(NSC)서도 “한국은 고 백선엽 영웅덕분에 오늘날 선진국으로 번영한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이 됐다”면서 공식 애도(哀悼)를 표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군장으로 치러지는 고 백선엽 장군의 장례식에는 국군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조화만을 보내졌고 빈소에는 끝내 찾지 않았으며, 청와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애도의 글조차 내놓지 않아 구국영웅(救國英雄)이 마지막 가는 길에 대한 예우에 맞지 않는다는 국민여론과 야당의 질타(叱咤)가 이어 지기도 했다. “과연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인지” 한편으로 의심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백 장군은 6.25전쟁당시 북한군의 총공격으로 국가운명이 절제절명(切除絶命)의 위기에 처했을 때 1사단장이던 그는 불굴의 리더쉽을 발휘하여 격전의 공포에 질려 퇴각하는 부하들을 향해 “내가 (전선에서) 물러서면 너희들은 나를 쏴라,” “너희들이 (만약) 물러서면 내가 너희들을 쏠 것이다”라고 비장(悲壯)한 각오로 독려하며 결사 항전하여 북한공산군을 격퇴시키고 마침내 낙동강전선을 사수(死守)하였다. 그 여세를 몰아 인천상륙작전과 평양(平壤)에 입성 마침내 압록강까지 진격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 격전이 그 유명한 ‘다부동 전투’로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고 백 장군은 최초의 육군대장으로 승진 육군참모총장과 연합합참의장을 비릇 주중국 대사와 주캐나다 대사, 주프랑스 대사 등 외교관과 주한 미제8군 명예사령관으로 국가외교안보에 헌신했고, 교통부장관을 지냈다.

  우리는 이번 전쟁영웅 고 박선엽 장군을 보내면서 깊이 생각해지는 것이 있다. 백 장군은 만주의 봉천군관학교를 나온 후 당시의 국제적 환경상황에서 비록 친일적인 측면에서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국군으로 돌아와 1950년 6.25 북한군의 불법남침으로 국가운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의 갈림길에서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공적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그는 회고록에서 만주군관시절 본의 아닌 그릇된 활동에 대해 반성과 한민족(韓民族)에 대해 깊이 사죄(謝罪)했다.

  지난 과거를 돌아보면 1945년 광복이전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에 당시 어쩔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에서 친일적 활동에 참여했던 인사들이 광복(光復) 후 그분들이 앞장서 국가재건(國家再建)에 혁혁한 공을 새웠던 인사들의 공적을 새삼 인정하고, 우리는 그 분들에 대한 과거의 과실(過失)에만 얽매지 말고 관용과 용서로서 대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민족과 국민통합차원에서 매우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한편 현 정부에는 과거 빨찌산의 자손인자가 국가안보담당 부서장에 오르고 있다. 이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염려되는 것은 이제 와서 친일파(親日派)다 또 친일파 후손이다 해서 사회에서 격리시킨다면 이는 민족과 국민화합의 길에 걸림돌이 됨으로 미래조국 대한민국의 발전을 지향(志向)해 나가기 위해 더욱 화합된 국민의식의 길을 열어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하는 바이며, 이 자리에서 삼가 고 백선엽 장군의 명복(冥福)을 빈다.

  김종하<국민행동본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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