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5) 이강산 시인의 ‘첫 배를 타야겠다’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5) 이강산 시인의 ‘첫 배를 타야겠다’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0.07.19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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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배를 타야겠다
 

 - 이강산

 

 꼭 한 사람 찾아가야겠다
 

 웅크리고 앉아 바다를 뒤집어쓴 섬이 컥컥, 숨넘어가는 소리로 뒤척여 바다를 잡아당기다 잠을 깼다
 

 섬 홀로 두고 온 날은 꿈도 섬처럼 아득하다

 닻을 내릴 틈도 없이 사라진다
 

 팽나무 아래서 슬그머니 바다를 찔러보던 나처럼 지금쯤 섬도 선착장에 앉아 밀물을 집적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다고 배가 달려오는 게 아니다

 섬도 안다
 

 외로워야 먼길이 가까워진다

 찾아갈 사람이 보인다

 
 늦기 전, 첫 배를 타야겠다

 

 <해설>  

 언제부터인가 겨울마다 찾아간 섬은 섬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홀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바다의 언덕에서 오랜 세월 사람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에 차마 섬을 혼자 두고 떠나 올 수가 없었습니다. 배꼬리에 앉아서 그 섬이 아스라이 멀어질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습니다. 

 섬의 눈은 깊고 커서 언제나 수평선 너머로 사람을 알아보는 듯합니다. 까마득히 멀어졌던 사람이 다시 섬으로 다가설 때까지 그 자리에서 꿈쩍도 않고 기다려 주는 섬. 섬은 떠났던 사람이 첫 배를 타고 오지 않으면 석양 무렵에는 섬의 눈은 온통 붉게 젖어 듭니다. 바위처럼 단단한 기다림으로 등대가 되는 셈이지요.

 그런 섬에게 잔잔한 썰물은 큰 선물입니다. 밀물이 들기 전, 밀물 같은 사람이 다가서기 전, 낡은 그리움과 외로움을 덜어 내는 섬. 그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고요하게, 천천히 썰물로 아픈 눈을 닦아 내지요.

 그런데 섬은 누구를 기다릴까요? 오늘까지 내게 정박하고도 나를 찾지 못한 것처럼, 섬 자신도 자신을 찾기 위해 바다에 홀로 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시인은 분명 섬이 기다리는 어느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첫 배를 타고 섬으로 갈 겁니다. 섬이 자기를 기다리며 잠들지 못 할 것만 같아서 첫 배를 타는 시인의 마음을 비로소 알 것만 같습니다.
   

 강민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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