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가곡 ‘고향의 봄’에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눈 감으면 어릴 적 꽃동네다. 바람결에 그때 향기가 밀려온다. 공감각 세계에선 그림으로 소리를 표현하고, 음악으로 빛을 대체한다. 회화 같은 음악, 음악 같은 회화가 탄생한다. 드뷔시 피아노곡 ‘달빛’은 지상에 사뿐히 내려앉는 은빛 선율을 그려낸다. 칸딘스키 회화에서 노랑은 희망의 팡파르, 초록은 편안한 바이올린 음악이다. 점-수평선-곡선-원-삼각형도 시작-정지-자유-평화 등 메시지를 전한다.
엊저녁(15일) 전북도립미술관 전시실에서 이색 콘서트가 펼쳐졌다. ‘미술과 음악의 공감각/통섭’을 주제로 한 공연이다.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과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드로르작의 명작들이 저마다의 모티브에 실내악으로 울려 퍼졌다. 칸딘스키는 영혼 세계를 깊이 표현한다며 음악으로 추상미술을 열었다.
콘서트는 국립현대미술관 대여작 30여점으로 꾸민 ‘갤러리 제로’전 부대 공연이었다. ‘갤러리 제로’엔 코로나 사태의 공백을 딛고 일어서겠다는 염원이 서렸다. 지난 몇 달 공연-전시들은 줄줄이 취소됐다. 14개 시군 봄 축제까지 수많은 예술행사가 무산됐다.
비상 상황엔 문화예술 예산부터 깎인다. 학교와 학원이 문 닫으면서 강사들은 생계를 걱정했다. 디지털 콘텐츠 개발을 가속화하는 가운데 아파트-병원을 찾는 ‘창밖의 아리아’ 공연도 열렸다. 그러나 사회 첫발을 딛은 청년 예술가들에게 현실은 막막했다. 5월 이후 예술 활동은 가까스로 재개돼 숨통을 키워왔다.
코로나가 물러가면 예술이 활력을 찾을까. 안타깝지만, 전주와 전북엔 그럴만한 동력이 없다는 탄식이다. 수십 년 누적된 예술계 침체였다. 대학 신입생이 줄면서 예술 관련 학과부터 감축됐다. 관련 입시 학원도 줄었다. 예술인이 이탈하고 관객이 떠나면서 예술 생태계가 위축돼왔다. 떠난 신진이 돌아오기도 하지만 일부 분야는 20대 후계가 끊겼다. ‘예향’ 깃발이 바랜지 오래다.
전주-전북 예술이 활로를 찾지 못한 채 즉흥적으로 위기만 넘겨왔다는 견해가 나온다. 광주비엔날레, 아시아문화전당으로 예술 국제화-현대화를 이룬 광주광역시와, 특색 있는 미술관들을 결집한 제주도가 전주 예술인들에게 부럽기만 하다.
전북은 예술 기반인 산업-경제부터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지난 한 달 사이 전주는 인구수에서 충남 천안 아래로 밀려났다. 천안 주민등록 인구가 시-군 통합 직후인 1995년 말 33만4,800명에서 올 6월 65만7,514명으로 배증한 사이 전주는 58만3,230명에서 65만5,472명으로 늘었다.
예술계가 손 놓고 있지마는 않았다. 장르 융합 등으로 대중의 다양한 새 기호에 다가서려 했다. 이날 콘서트 주제인 ‘공감각/통섭’도 새 길을 열기 위해 부르짖어오던 구호였다. ‘통섭’은 경계를 허물어 다른 분야들을 섭렵하면서 조화로운 새 생태계를 만든다는 뜻이다. 이념을 뛰어넘는 인문학의 겸허, 늘 새롭게 질문하는 과학, 장인의 피땀이 작가에게 숙명이다.
예술에서 수요와 공급의 일치란 없다. 수익도, 선순환 구조도 애초 불가능하다. 문화예술은 시대의 꽃봉오리다. 시혜 대상이 아니다. 삶의 질을 높이는 값진 투자다. 전주시립미술관이 태동하고 있는 가운데 전주 한옥마을 등에 관광과 연계한 또 다른 문화예술 공간들을 만들자는 주장도 나온다. 예술인에게 흡족한 공공투자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도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형편이 좋아지리라고 꿈꾸는 예술인은 없다. 가난과 고난과 실패는 운명이자 작품 밑천이었다. 한계에서 삶과 예술을 일치시키기 위해 이를 악무는 게 예술인이다. 그들에게 작품은 자기 성찰의 거울이자 구원의 도구였다. 어려운 이들에게 작은 위로를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꺼이 땀을 흘렸다. 그들 모두에게 격려를 보낸다.
김창곤<前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