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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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성욱 전북과학교육원 파견교사
  • 승인 2020.07.1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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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농장에서

 내 아버지는 농사꾼이셨다. 벼농사도 지으셨지만 가지, 호박, 풋고추, 상추 같은 원예작물을 많이 재배하셨다. 원예작물은 신선함이 생명이다. 그래서 공판장에 내다 팔 채소들을 당일 이른 새벽에 주로 수확하셨다. 초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와 함께 일찍 일어나 일을 거들어 드린 적이 자주 있었다. 이슬을 흠뻑 머금은 가지나무, 호박넝쿨을 지나다니다 보면 옷은 빗맞은 것처럼 금세 젖었다. 신발도 다 젖어 처벅처벅 소리가 났다. 그래도 이 정도는 참을 만했다. 검정 물무늬가 있는 모기, 일명 아디다스 모기가 팔이며 목이며 심지어는 긴 바지를 입은 다리까지 물을 때는 참 힘들었다. 워낙 바쁘고 빨리 움직여야 해서 간지럽다고 투정 부릴 시간도 없었다. 일이 다 끝나고 아버지가 공판장에 채소를 싣고 가시는 모습을 본 후에야 어느새 모기 물려 붉게 부어오른 목이며 팔다리를 팍팍 긁으면 집으로 돌아갔었다. 참! 한 가지 또 있다. 가지 꼭지에는 가시가 참 많다. 조심조심 가시에 찔리지 않게 따고 포대에 담는다고는 하지만 가지에 찔리는 경우가 많았다. 손끝은 어느새 가지 물이 들어서 진보라색이었고 잘 보이지도 않는 가시를 바늘도 더듬으면서 뺏던 기억이 난다. 손도 처음에는 잘 씻기지 않지만, 하루 여러 번 비누로 잘 씻어내면 금세 원래 손으로 돌아온다. 어느 날 문득 아버지 손을 본 적이 있었다. 아버지 손바닥에는 군살이 딱딱하게 박혀 있었고 손끝은 조금 갈라져 있었고 손톱이랑 보라색으로 짙게 물들어 있었다. 가지물이 채 빠지기 전에 다시 물들고 또 물들기가 되다 보니 손도 손톱도 그렇게 탁한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아버지의 손을 한참 동안 바라봤고 머릿속에 오랫동안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아버지를 더 깊게 알게 된 것 같다. 손 하나 자세히 보았을 뿐인데…….

 

 ▲선생님 눈썹은 숯검댕이 눈썹

 나무 블록 장난감으로 행복하고 즐거운 학교 모습을 만들어 보도록 했다. 무엇을 만들지 고민하는 아이, 그냥 일단 나무 블록을 가지고 네모, 세모를 만드는 아이, 친구가 어떻게 만드는지 살피는 아이다. 나무 블록끼리 탁탁 부딪치며 소리를 내는 아이, 하나씩 던지면서 무슨 과녁을 향해 던지는 아이……. 일단 시작은 참 다양하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여기저기서 모양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 ‘나도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만들기에 집중한다. 생각은 멋진데 생각대로 만드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 그러면서 하나둘씩 욕심을 버리고 단순하게 만든다. 대부분은 학교 건물이나 놀이터, 축구장 등을 재미있게 노는 장소들을 만든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학교 옆 문방구나 편의점까지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한 친구가 좀 특이한 모양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무 블록은 아래서부터 차근차근 쌓아가야 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모양이 완성되어 나오기까지는 무엇을 만드는지 모를 때가 있다. 무엇을 만드는지 점점 궁금해 졌다. 시간이 지나서 만든 작품을 소개하는 시간이 되었다. 사람 모양 같았다. 아이는 선생님을 만들었다고 했다. 특히 선생님 눈썹이 진해서 눈썹을 표현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생님과 텃밭 가꾸기 이야기며 축구하는 이야기며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상들을 하나하나 말했다. 아이에게 행복하고 즐거운 학교 중심에는 선생님이 있는 것 같았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안 살면서 서로 정들어가고 서로를 자세히 보면서 더 깊이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박성욱(전북과학교육원 파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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