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어떻게 둘로 나눌 수 있을까/ 오늘도 철철 넘치는 저 강을 어떻게 막아 둘로 만들 수 있을까/ 처음부터 하나였던 이 땅을 어떻게 쪼갤 수 있을까”「죄와 벌」중 일부
시인의 절절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1952년 6·25전쟁 때, 당시 스님이었던 시인의 아버지는 월북했다. 아버지의 월북으로 시인의 가족이 겪어야 했을 고통을 상상할 수 있을까? 가난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그리움이었고, 고독이었다.
이존태 시인이 첫 시집 ‘죄인의 꿈(신세림출판사·1만원)’을 발간했다. “아버지가 가셨던 길/ 혼자 짐작하며 가본다”고 노래한 시인의 염원을 담아낸 시집이다. 아버지의 생각을 가슴에 묻어두고 혼자 가지고 살아가려했으나, 그 생각이 피고름으로 가득차 쏟아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던 탓이다.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가 월북한 이후 연좌제 때문에 말도 못하고 긴 세월을 끙끙 앓고 살았던 시인은 그저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고통스런 삶을 보낸 뒤 시인은 이제 아버지를 용서한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의 길을 따르겠다는 다짐을 적는다. 성장하면서 아버지가 월북하며 가져간 꿈이 ‘민족의 통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가족의 고통 역시 민족의 분단에서 비롯된 일임을 이해한 것이다. 이내 지나온 삶을 다듬어 시편으로 만들고, 기꺼이 통일의 밑거름으로 내놓은 것이다.
이 시인은 2019년 ‘동방문학’을 통해 늦깎이로 등단지만, 사실 그는 고교 시절에 ‘포도원’이라는 문학동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고교 3학년 때는 강상기 시인과 함께 ‘2인 시화전’을 열 정도로 열정적으로 시창작을 했던 문학도였다. 세월의 무게 만큼이나 그를 짓눌렀던 꿈이 친구의 권유에 힘을 받아 문단 데뷔도, 시집의 발간도 이뤄진 것이다.
강상기 시인은 ‘우정이 성장하여 여기까지 왔다’라는 발문을 통해 “지난해 봄 동창회에서 친구가 뜻밖에도 두툼한 인쇄물 복사본을 주면서 읽어보라고 했다. 꺼내 읽어보니 전부 시였다”며 “교회 장로이니까 신앙적인 시나 썼을 것으로 짐작했는데 그게 아니고 상당히 중요한 시 작업을 하고 있었던 거였다. 가족의 아픈 역사가 현대사와 맞물려 있는 그야말로 민족 비원이 담긴 시작품들이었다”고 회고했다.
“하늘은 저렇게 맑은데/ 그날은 피비가 내렸다/ 검붉게 엉킨 피가/ 다음 날이 되어도 그 다음 날이 되어도/ 미처 굳지 못하고 거리를 적시었다” 「하늘은 저렇게 맑은데」중 일부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은 맑은 날, 시인은 그렇게 광주를 바라보았다. 코로나19의 시대를 지나며 21세기가 이룩한 첨단문명의 허상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그리고 민족의 통일은 대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일임을 강조한다.
김광원 시인은 “시집 ‘죄인의 꿈’은 한국적 한의 삭임을 보여주는 대표적 시집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어린 시절 개인의 아픔과 가족사의 고통이 곧 민족의 아픔으로 확산되고 동일시되어, 이제 오로지 ‘민족통일’이라는 화두 하나로 집약되는 이 시집은 한 개인의 시집이라기보다는 민족 앞에 바치는 ‘헌시’의 성격을 띤다”고 해설을 붙였다.
이 시인은 원광고와 전주교육대학교, 원광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초등 및 중등교사로 40여 년간 봉직, 전주완산중학교와 전주완산여고 교장을 역임했다.
김미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