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심연
괴물의 심연
  •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 승인 2020.07.14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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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트릴로지 3부작 가운데 단연 으뜸은 2008년 개봉된 영화 <다크나이트>(dark knight)다. 악당 ‘조커’역을 맡은 히스 레저의 명연기와 코믹스를 원작으로 하면서도 철학적이고 무거운 주제로 재해석한 감독의 능력이 돋보인 영화다. 영화에서 ‘배트맨’은 낮에는 자본주의 질서에 순응하면서 성공을 구가한 젊은 재벌 브루스 웨인이었다가, 밤이 되면 악당들을 직접 처단하는 가면 뒤의 다크 나이트로 그려진다. 보통 고담시를 범죄로부터 수호하려는 배트맨과 혼돈과 악을 상징하는 조커의 대립구조로 영화를 이해하지만, 실제 배트맨과 대립쌍을 이루는 캐릭터는 고담시의 젊은 검사 하비 덴트다.

 브루스 웨인은 어릴적 범죄자들에게 부모님이 살해당한 뒤 외롭게 자란다. 그는 고담시의 범죄가 더 이상 합법적 수단으로 제어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배트맨이 되어 밤의 거리를 누빈다. 막스 베버가 말한 ‘합법적 폭력을 독점하는 정치체제’로서의 국가는 고담시의 범죄앞에 무력하다. 배트맨은 국가체제를 거부하고 자경단으로서 직접 범죄자들을 벌한다. 반면 촉망받은 젊은 지방 검사 하비 덴트는 고담시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 지방검사장으로 선출되고, 국가의 틀 안에서 범죄자들에게 합법적인 ‘폭력’, 그러니까 수사와 기소를 하여 감옥에 보낸다. 브루스 웨인은 하비의 검사장 선거 모금 캠페인을 열고 하비는 배트맨의 업적을 칭송한다. 두 사람은 낮과 밤의 수호자들이다.

 절대악인 조커, 낮과 밤이 뒤바뀐 배트맨, 그리고 ‘빛의 기사(shining knight)’인 검사 하비 덴트는 선과 악, 질서와 혼돈의 묘한 삼각관계를 이룬다. 영화의 말미에 하비 덴트는 조커의 꼬임에 빠져 얼굴의 절반에 화상을 입고 복수심에 불타는 악당 ‘투 페이스’가 된다. 그는 규칙을 준수하고 절차적 정당성에 의거하여 범죄자를 징벌하는 검사에서 단지 동전 던지기라는 ‘운’을 통해 사람을 살해하는 범죄자로 재탄생된다. 투 페이스는 누군가를 징벌할 때 동전을 던지고서 앞면이 나오면 살려주고 뒷면이 나오면 죽이는 ‘운의 규칙’을 설정해둔다. 검사의 ‘법’은 질서지만 ‘운’은 완벽한 악당 조커의 ‘혼돈’에 가깝다. 문명사회는 혼돈과 운이 상징하는 무질서와 예측불가능성을 억제하는데 초점을 맞춰 발전했다. 억제의 수단은 ‘법’이며, 수단을 합법적으로 독점하는 일은 곧 ‘법 집행’이었다. 영화에서 사회의 수호자가 무질서의 악에 편입되는 과정은 흥미롭다.

 하비 덴트는 선의에 가득찬 자가 오히려 쉽게 악에 물들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코스모스의 세계를 카오스로 인도하는 법의 수호자라는 역설. 니체는 그의 저서 <선악의 저편>에서 이를 경계하며 같이 말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그를 들여다보게 되므로.”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의 전문수사자문단 소집과 관련하여 추미애 법무장관과 충돌하였다. 언론은 두 사람의 공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였고, 사실상 윤 총장이 추 장관의 하명에 순응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진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다. “검사가 수사권으로 보복하면 깡패지, 검사입니까.” 몇 년 전 윤 총장이 적폐청산 수사와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답한 말은 국민에게 인상적으로 회자되곤 한다. 그는 니체의 경고를 예전부터 마음에 새긴 듯하다. 하지만 최근 그의 모습을 보면 그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하비 덴트인가, 투 페이스인가. 국민은 동전 던지기를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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