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80> 마음을 채우는 차(茶)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80> 마음을 채우는 차(茶)
  • 이창숙
  • 승인 2020.07.1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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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우려진 차
잘 우려진 차

 왜 그토록 많은 성인들이 예(禮)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는지,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이슈만 있고 사람이 없음을 필자만이 느끼는 것일까. 일찍이 순자(荀子, BC323?~BC248?)는 법은 예 뒤에 따라오는 개념이지 나란히 놓거나 대체의 개념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예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말이다. 또한 예의를 통해 본성과 감정과 욕구를 다스릴 수 있으나 본성을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감정과 욕망은 인간의 보편적 심리 현상임을 드러내기도 한다.

 즉 감정과 욕망은 인간 활동의 동기이며 사회생활의 동력이 될 수 있다. 억제보다는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순자의 생각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오직 예의를 통해서만이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본성을 다스리는 것이라 했다. 순자의 이러한 고민은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근원을 이루는 것이기에 AI시대에 더욱 필요한 듯하다.

 또한 본성을 다스리는 것은 마음으로, 탁한 본성이나 감정보다 위에 존재한다. 마음이 청명하여 고요한 상태에 머물러있다면 옳고 그름을 정확하게 깨칠 수 있다. 즉 마음의 도덕적 기능을 잘 쓰게 하는 것이 마음공부이다. 마음은 한없이 다른 생각을 일으키기도 하니 내몰아주는 물상(物像)이 필요하다. 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차(茶)이다. 차의 청정한 맛과 향기와 색에 집중한다면 산란한 마음을 채울 수 있다. 마음을 비우기가 어렵다면 차로 채우며 자신에게 예를 갖춰보자. 이렇게 하다 보면 마음은 아름다운 차향기로 가득해질 터이다. 이 또한 마음을 비우는 훈련이 되지 않을까 싶다.

 조선의 역대 왕들 가운데 가장 큰 슬픔을 간직한 정조, 그는 세손 시절부터 당쟁의 치열한 난국 속에서 얼마나 저린 마음을 안고 살았을까. 목숨을 지키기 위해 무술을 연마했으며 잠을 자지 않고 독서를 할 정도로 학문에 심취해 있었다. 그는 독서로서 마음을 다스리며 그 옆에는 차가 있었다. 왕이 된 후에도 불면증과 부친 사도세자에 대한 그리움은 참으로 절절했을 것이다. 다음은 정조가 차를 마시며 그의 부친 사도세자를 그리며 지은 시이다.

 

  홀로 앉아 밖을 보니 맑은 하늘 아름다운 햇빛

  자연과 벗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네.

  경치는 참으로 아름다워 모든 것이 싯구가 되네.

  마음으로 물시계를 보니 호롱불에 깊은 밤이 되었구나.

  맑은 차 마시고 시경을 읽으니 졸음이 밀려오고

  차솥에서 올라오는 가르다란 차연기에 기쁨이 일고

  한참이 지난 후에 밖을 보니 나의 눈빛 학의 발걸음을 따라 움직이네 .

  맑고 화사한 봄날의 문밖의 길을 보고 있노라니

  생각이나고 볼 수가 없어 보고싶은 마음 곱절에 이르네.

 

정조는 차를 마시며 책을 읽으면서 밤을 새운 듯하다. 아름다운 봄날 새벽길 따라 그리운 사람이 나타날 것같은 마음을 읊은 시이다. 또한 현실을 벗어나 자연과 벗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함이 배어있다. 그는 신하들과 찻자리를 마련해놓고 찻물이 끓을 때까지 시를 읊고 신하들이 화답하는 풍류를 즐기기도 하였다. 세심대에 올라 신하들과 찻자리를 즐기며 먼저 시를 읊고 신하들이 화답한 시가 있다. 그중에 승정원 승지 이만수(1752~1820)가 지은 화답시 이다.

 제신들은 너무 예의에 얽매이지 마시오/하늘도 오늘은 차와 소리에 취하고 노는 것을 허락하였소/ 한해에 한번 짙게 꽃이 피는 계절/ 집집마다 아름다운 나무가 서 있구나/ 이른 봄 화사한 꽃 대궐에 먼저 닿았네/ 루대에 지엄하신 왕께서 왕림하셨네/경회루에 수 없는 날이 있지만 봉래 선경에 주상께서 내린 차이니 차 한자 드세.

 

군주와 신하, 그들에게는 예가 있어 마음을 다스릴 수가 있었고 예를 놓을 때는 풍류가 있었다. 거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차(茶)와 시(詩)이다.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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