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전북문학기행> 9. 일상의 속도로 바라보는 전주의 작은 길들 - 권진희 작가 ‘찰랑이는 마음은…’
<2020전북문학기행> 9. 일상의 속도로 바라보는 전주의 작은 길들 - 권진희 작가 ‘찰랑이는 마음은…’
  • 이휘빈 기자
  • 승인 2020.07.1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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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깊게 바라보는 권진희 작가 묘사한 전주 일상의 풍경
전주는 전통의 이미지에 그치지 않고 느림과 인간미가 있는 도시

 덕진공원의 연꽃은 7월에 꽃봉오리를 연다. 꽃봉오리가 열리면 덕진공원의 입구부터 호수 건너 주차장까지 연꽃의 향이 번지는데, 그 향의 깊이는 잎의 향기 속에서도 부처처럼 자신을 드러낸다. 이 꽃향기 속에서 걷고 있으면 전북대학교의 화려한 가게들이 있는 큰 길 대신 좁고 남루한 가게들이 있는 마을길을 떠올릴 수 있다.

 여름의 초입에서 덕진공원 일대는 익숙한 향기와 일상들이 낯선 분위기를 빚어내고 있었다. 이 길들은 권진희 작가의 에세이 ‘찰랑이는 마음은 그냥 거기에 두기로 했다’에서 나온 묘사와 같다.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사무소에서 근무하다가 세계를 향하는 여행작가로, 그리고 이제는 사진 및 에세이 작가로 활동하는 그녀의 시선은 어느 작품에서라도 초점이 깊다. 권 작가의 책은 세계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일상과 전주에 사는 자신의 일상을 다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의 높이는 같다. 다만 권 작가는 전주의 한옥마을, 오래된 옛 동네, 전주를 관통하는 전주천 옆의 천변들, 그리고 그 일상 속에서 이웃들과 자신이 마음을 전하는 사람들에 대해 오랫동안 사색했고, 그래서 자신과 타인의 감정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2부 ‘지나는 계절들’에서는 작가는 전주의 지명에 대해 특별히 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래서 책에서 전주는 전통의 모습이 아니라 사람과의 거리가 짐작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나고 자랐던 이 도시에서 정착하면서 친구와 식사하고 차 마시고 맥주 마시는 순간들 속에서 일상 속 느린 믿음들에 대해 되새긴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한 전주의 버스정류장과 덕진공원은 여행자의 시선과 주민의 시선이 함께 섞여있다.

 큰 도시들의 번잡함보다 도시의 지역색을 마주하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에게 전주에 대해 물었다. 작가는 전주에 대해 전주천을 따라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나무가 있는 풍경, 저녁 무렵 한옥마을의 작은 오솔길들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권 작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길은 계절의 변화를 보여준다”며 “나무 잎사귀가 떨어지고 다시 피어나는 순간들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권 작가는 책의 2부 중 ‘화양연화’ 부분에서 전주의 일상을 이렇게 묘사한다. “여행 이후의 미래가 여행을 하던 시간들만큼 아름다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여행을 마쳐야 하는 마음이 고되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르고, 이제는 여행을 잊지 않으려는 자의와 그 여행을 함께 공유하자는 타의로 계속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전주의 개발은 멈추지 않고, 그 혜택들은 신도시로 이어진다. 도시의 친숙함은 도시계획으로 낯설어진다. 전주의 개발된 모습 속에서 옛 모습은 점차 지워져 갈 것이지만, 주민들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오늘도 전주의 작은 길에는 평범한 푸른 잎들이 새 여름을 메꾸고 있다.

이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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