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연루 다리 밑에서 매일 색소폰 부는 팔순 노파
청연루 다리 밑에서 매일 색소폰 부는 팔순 노파
  • 신영규 도민기자
  • 승인 2020.07.0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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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심취하면 세상이 떠내려가도 몰라

 “소리에 심취하면 즐거움에 빠집니다. 즐거움도 이런 즐거움이 없죠. 색소폰을 입에 대고 한바탕 불어대면 세상 시름 다 잊고 스트레스도 확 풀립니다.”

  전주 한옥마을과 서학동 사이를 잇는 전주천 위의 무지개형 다리 청연루(晴烟樓). 이곳 다리 밑에는 매일 오후 2시만 되면 팔순 노파가 전동 스쿠터에 앉아 색소폰을 연주한다. 올해로 5년째 독주를 하고 있는 이 노파는 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하루로 거르지 않고 날마다 색소폰을 불까.

  주인공은 전주시 완산구 남노송동에 사는 양동규(81)씨. 그는 비가 오는 궂은 날만 빼고 매일 오후 2시만 되면 전통 스쿠터를 타고 청연루 다리 밑으로 출근한다. 그의 연주를 들어주는 관객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오로지 색소폰 연주에만 몰두해 자신이 즐겁기만 하면 그만이다.

 “소리요, 이 맛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알 수가 없지요. 연주에 한 번 빠지면 세상에 떠내려 가도 모릅니다.”

  그가 색소폰을 배우게 된 것은 6년 전이다. 70대 중반에 악기를 다루려니 모든 게 서툴고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집에서 색소폰을 불면 아파트 주민들이 시끄럽다고 할까 봐 매일 밖으로 나와 연주에 몰입하게 된다.

 “처음엔 도레미파도 몰랐지요. A장조 D장도 C장도 A마이나 D마이나 프렛 등…. 플렛은 반음 내려가고 삽은 반음 올라갑니다. 이걸 하나하나 독학으로 배운겁니다.”

 양씨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고, 주름살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81세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탱탱했다. 목소리나 움직임 또한 또렷했다. 그가 날마다 다리 밑에서 색소폰을 부는 이유는 다른 게 없었다. 오직 독학으로 색소폰을 배우려는 일념이다. 돈이 없어 학원에도 못 가고 혼자 배우겠다는 집념이 강했다.

 양씨가 색소폰을 좋아하게 된 동기는 시조(時調) 때문이다. 그는 대한시조협회 전주시지회 사범을 역임한 시조의 달인이다. 제26회 광주 5.18 문화부장관상 시조부 장원을 비롯해서, 제33회 전주 대사습 전국대회 시조부 장원, 제3회 부안 석암제 문화 대상 시조부 장원, 제29회 종합 대상부 서울특별시장상을 수상할 정도로 각종 시조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그가 시조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것은 그의 아버지의 영향 탓이다. 순창 동계면이 고향인 그는 어려서 아버지가 시조의 명창이었다고 털어놨다.

 “우리집 사랑방에서 아버지가 시조를 하면 동네 사람들 수십 명이 몰려 들어 구경을 했죠. 그러면 나는 아버지 막걸리 심부름을 하면서 시조를 읊는 아버지 입을 보고 ‘시조란 바로 저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죠.”

 양씨는 각종 시조대회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했다. 그는 전주 대사습 심사도 여러 번 했고, 임방울국악제 같은 심사도 했다고 했다.

 그는 현재 전주시 여러 복지관에서 시조를 가르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시조뿐 아니라 복지관을 찾아 노인들에게 하모니카와 색소폰을 불어주고 있다.

 “복지관에서 색소폰과 하모니카를 불어주고 시조 한 수 해주면 노인들이 손뼉을 치면서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나도 그들과 행복을 나누고 있습니다. 행복이 별거 있습니까? 이런 즐거움이 행복이죠.”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풍류객인가? 다시 그의 입에서 불어대는 색소폰 소리가 청연루 교각 밑을 흘러 전주천에 구슬프게 울려 퍼진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숨어드는데 부두의 새아씨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신영규 도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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