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이여 안녕하라
홍콩이여 안녕하라
  • 이복웅
  • 승인 2020.07.07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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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의 기구하고 슬픈 운명은 태통부터였다. 그러나 홍콩인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워 낸 세계 무역 중심과 금융, 전자산업으로 국제 도시로 번영되어 왔으나, 이제는 중국의 강력한 탄압으로 자본과 인재의 엑소더스가 우려가 된다.

  지난 5월 베이징 인민대회장에서 중국은 전국인민대표대회 열고 “홍콩 국가보안법”을 15분만에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중국정부의 보안국을 홍콩에 세우고 비밀경찰도 운용하도록 했다. 외국세력의 내정개입, 국가분열, 국가정권의 전복, 테러리즘 활동금지 등에 대한 처벌과 반정부 행위에 대하여 “종신형”도 가능케 하였다. 또한 민주화 운동가들을 중국을 반대하고 홍콩을 어지럽히는 인사로 분류 즉각 검거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안으로 당장 홍콩반환 기념식 집회가 금지됐었다.

  홍콩의 미래였던 자유와 민주의 상징인 노랑우산과 촛불은 풍전등화에 놓여있게 됐다. 지금의 홍콩보안법은 2019년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보다도 광범위하여 민주화 행위에 대한 제재가 가능하고 중국기관이 직접 홍콩에 가서 법을 집행 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한 법안이다. 이는 강력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차원이 다르다고 할 정도로의 법안이다. 이러한 법안을 홍콩 주민들의 의견 수렴없이 중국정부의 일방적인 제정으로 홍콩인들의 분노를 이르켰다. 그러나 중국은 제정된 홍콩 보안법을 내세워 강력한 경찰력을 동원 홍콩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홍콩은 영국이 점령하기 전에 소수의 어민들이 살고 있는 어촌이었다. 1839년 중국정부는 광저우에서 아편 추방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으로 인해 그곳에 있는 영국 공장을 공략하고 아편을 몰수 했다. 마카오로 퇴각한 영국은 통상조약을 체결 하든지 아니면 영국인들이 안전하게 기업을 할 수 있는 작은 섬을 할애 해 줄 것을 요구한다. 홍콩 섬 근해에서 시작된 전투는 아편전쟁(1839-1842)으로 확대 되었다. 이 전쟁이 끝난 뒤 맺어진 것이 “난징조약”이며 이 조약에 따라 홍콩은 영국으로 할애를 받았다.

  19세기로 접어 들면서 중국의 국력이 약해지자 1860년 영국은 스톤커터 섬과 주릉반도를 포함해 홍콩 주변의 영토를 추가로 얻어냈다. 결국 영국은 1898년 중국으로부터 중국 본토 근해의 235개의 섬과 주릉반도에서 신전 강 사이의 육지를 포괄하는 지역을 99년간의 조차권을 얻어냈다.

  이렇게 불행으로 시작한 홍콩은 세계 무역 중심지로 번창했으며 중국으로부터 수많은 이민을 끌어 드렸다. 1949년 중국이 모택동의 공산당에 넘어가 중국 기업인들이 홍콩으로 넘어 오면서 홍콩의 경제는 큰 자극을 받게 되었다. 60년대 산업화는 섬유 제조업에 기반을 두고 성장했고, 70년대 종반부터 중국과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점차 전자, 금융,무역 등로 확대 되었다. 홍콩은 이 무렵부터 아시아의 작은 용이라고 불리면서 경제와 문화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기 시작했다. 1997년 7월1일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중국 중앙정부 직속으로 홍콩 특별행정구가 설립됐다. 이로서 100여 년에 걸친 영국의 홍콩 식민 통치가 막을 내렸다.

 이에 따라 중국은 일국 양제를 견지하고 보안하는 선에서 홍콩은 영국이 통치한 때와 유사한 정치제도를 거의 유지한 채로 중국의 홍콩 정책인 일국양체제에 따라 홍콩의 행정을 이끌어 왔다. 그러나 홍콩의 행정장관 선출권을 홍콩주민들에 의한 직접선거로 선출 할 것을 요구하는 홍콩민의 요구는 2014년 대규모 민주화 시위로 번저 소위 노랑우산 혁명이 일어 나게 된다.

 홍콩 반한후 공산화를 우려 했던 영국 마거릿 데처에게 일국양체제, 즉 중국은 사회주의, 홍콩은 자본주의 두 개의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내용으로 2047년까지 50년간 중국본토와 분리해서 홍콩의 자본주의 체재와 인권을 보장 키로 했었다. 이를 제안했던 것은 덩샤오핑이었으나 시싱핑에 와서 내 팽겨 져 버렸다.

  홍콩 국가보안법에 대하여 미국은 더 이상 홍콩에 대한 최혜우국 대우의 특혜를 철회 하여 특별 지위를 박탈했다. 1992년 홍콩 정책법에 따라 부여했던 관세,투자비자발급 등의 우대 조치도 없애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금융과 물류에 있어 홍콩의 국제적 지위가 악화되고 중국 역시 홍콩을 통하여 해외 진출을 발판삼고 있어서 큰 경제적 타격이 예측된다 뿐만 아니라 중국 관리들의 미국내 있는 자산을 동결 할 것이다. 또한 미국은행과의 거래 금지는 사실상 국제 금융망 퇴출 조치와 다름없을 것이다.

 홍콩은 한국 경제에도 중요한 거점 지역이다. 7,000여명의 영주권자와 17,000여명의 한국 교민들의 삶의 안전성도 위협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세계 경제 2위 대국 중국이 국제와의 약속을 저버린 댓가는 스스로 치르게 될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홍콩 주민들이 겪는 고통과 수난을 치유 할 길 없이 삶의 뿌리조차 흔들리게 되는 방황하는 홍콩의 민주화는 어디로 갈 것 인가?

 오늘 따라 가수 현인의 “홍콩 아가씨”를 목놓아 부르고 싶다 제발 홍콩이여! 안녕하라.

 

 이복웅 / 사)군산역사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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