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진공원에 응집된 전라정신
덕진공원에 응집된 전라정신
  • 송희 시인
  • 승인 2020.06.25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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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100주년 글로 되짚는 전북 구국혼 2 전주2

   간재 전우 선생 비☞시비공원 ☞동학농민혁명 3대 상징☞최영희 장군 ☞김일두 의사

  ☞취향정☞ 법조3성 상을 만나다 

오동이 뚝뚝 지는 길을 나선다. 개념적이었던 전라정신의 흔적을 찾아 내 밑둥을 단단히 키워야겠다. 덕진공원에는 전북의 대표격인 문인들의 시비와 전북인의 자랑인 애국지사비, 공적비, 추모비, 대한민국을 빛낸 법조 3성聖 동상 등이 있다. 만발한 아카시아꽃의 호위를 받으며 전주 덕진공원에 이른다. 강암 선생이 쓴 현판, 연지문 앞에 서니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붓길을 따라 연향이 피어난다.

 

 초록지붕이 넓어져 물벌레집 기둥도 튼실할 때쯤 연못에 갑니다

 버선걸음으로 초록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바람의 뒤태가 가뿐합니다

 막 돋은 연꽃미소와 물방울들을 받들어 곁에 앉습니다

 등이 펴지는 소리를 오래 듣습니다

 뿌리가 내리는 소리를 오래 듣습니다

 

 ■ 정통 유학자 간재 전우 선생 碑(비)

 연지문에서 10여 미터 우측에 간재 전우 선생의 비가 있다. 간재 선생은 한말 호남의 큰 선비이다. 품행이 곧고 단아한 사람을 일컬어 선비라고 한다. 1910년 일제가 국권을 강탈하자 이에 분개하여 나라를 강건하게 하는 것은 교육이라고 믿어 제자를 양성했다. 지금의 부안 군산 등에 정착한 뒤 항일정신을 고취시키고 도학을 가르치며, 수많은 제자와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중에 금재 최병심, 고재 이병은, 유제 송기면 등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다. 간재 선생은 고종황제로부터 여러 차례 관직을 제수 받았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그의 성리학적 연구업적은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조선조 최후의 정통유학자로서 추앙받고 있다. 총칼을 앞세우는 일 아니고도 애국하는 길은 많구나 생각하게 된다.

 

 ■ 전북을 대표하는 詩(시)가 흐르는 詩碑(시비) 공원

  세 그루의 소나무가 연리목처럼 심어져 있는 화단의 원형 광장에는 전북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시비가 예향의 품위를 드러낸다. 정면에 이목구비가 수려한 신석정 시인, 우측에는 이철균, 백양촌 시비가 있으며 좌측으로 김해강 시비가 있다. 김해강 시인은 친일 시를 썼다 해서 논란이 많다. 더구나 일제 말엽에 이르러 썼다 하니 안타깝다. 그렇게 쉽게 광복이 될 줄 몰랐다는 그들의 후일담은 더 서글프다. 김해강 시인이 광복 후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큰 업적을 쌓았다 하나, 어느 한 부분의 친일 행위라도 두고두고 역사적 평가대에 오를 수밖에 없다. 석정 시인은 국민의 80%가 창씨개명을 한 와중에 끝끝내 창씨개명을 거부했다. 정치, 경제적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민족정신의 일념으로 그들의 협박을 견뎌낸 것이다. 디디는 곳마다 샛노란 꽃창포가 배경으로 깔린다.

 

 ■백성이 하늘이다,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장군

  ‘백성이 하늘이라’ 선봉자인 전봉준 선생 상엔 사발통문을 들고 서 있는 서슬 퍼런 도포자락이 바람에 흔들리고, ‘사람이 한울이다’ ‘보국안민 척양척왜’ 우직한 돌판에 새긴 손화중 장군 추모비와 시신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그를 부르는 ‘개남아 개남아 김개남아’김개남 장군 추모비, 뭉클하다 아득하다. 동학농민혁명의 3대 상징이 모여 있다.

 

  그네를 탄다 / 의협심 대찬 장군들과 그네를 탄다 / 초록바람에 더욱 깊어진 ‘백성이 하늘이라’ / 사발통문을 움켜쥐고 그네를 탄다 / 탐학한 지배자들을 저지하겠다는 / 겁도 없는 장군들과 그네를 탄다 / 무너져 내리는 나라와 / 고통에 신음하는 민중을 구제하겠다고 나선 / 횃불과 그네를 탄다 / 나는 들었다 / 그들의 의기는 지주들에게 불붙고 / 3·1운동의 불씨가 되었다고

 

 ■ 6·25의 상흔 아! 최영희 장군

연못가를 따라 가면 6·25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최영희 장군 공적비를 만난다. 6.25전쟁 당시 삼남지구 전투사령관으로 참전, 혁혁한 전공을 세운 그의 투철한 군인정신과 탁월한 리더십은 널리 알려졌다.

온갖 침략을 많이 당한 나라, 사방이 대국으로 둘러싸여 이리저리 밟히다 쇠심줄처럼 질겨진 나라, 그의 단에는 빛바랜 태극기가 빛을 발하고 있다. ‘위국단심’이라는 외침은 연못으로 흘러들어 연의 기둥을 밀어올리고 있으리라. 불붙은 기차 속에서 살아남은 어머니 팔뚝에도 6·25가 휘갈긴 화인火印이 살고 있다.

 

■16세에 독립운동에 뛰어든 김일두 의사

독립운동가 추산 김일두 의사 紀蹟碑(기적비)는 가까이에 있다. 죽어서도 나라를 잊지 못하는 듯, 머리에도 발에도 무궁화를 새겼다. 이 분은 순창 출신으로 본명은 김동수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6세 어린 나이로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국내 활동 중 독립자금을 모집하다 잡혀 두 차례나 옥살이를 했다. 8년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 나이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지고 홀연히 사라진 독립운동가라니!

 

연못 아래 수궁에는 영령들이 모여 살 거야 / 꽃대에 묻어 가끔씩 바깥구경을 하러 올라 올 거야 / 흙탕물에 처박힌 목숨 위에 우린 얹어져 있어 / 한 세상, 두 세상 구르고 있어 / 이들의 등을 밟고 부상하는 중이야.

 

■반민족 행위자가 사유화 했던 취향정

잠시 숨을 돌리고 연꽃향기에 취하기 좋은 최적의 장소, 취향정으로 향한다. 취향정은 한번쯤 짚어야 할 역사가 있다. 일제 강점기에 중추원 참의, 여산 군수, 농공은행장 등을 지낸 전주지역의 대표적인 반민족행위자 박기순이 자신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1917년 세워 사유화했기 때문이다. 그는 덕진연못의 시설 공원권을 장악하고 사람들을 모아 詩會(시회)를 여는 등 당시에 시의 편액을 정자에 걸어놓고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였다니 참으로 부끄럽다. 광복 후 전주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역사를 바로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 이 나라 법조계의 대부 법조 3성(聖)

멀리서 봐도 품위가 당당한 세 분의 상이 있다. 오래 전부터 우리고장 전북은 ‘청리의 요람이요 법조인의 성지’라 불러져 왔다. 이 나라 대표적인 법조계의 대부 세분이 모두 전북에서 태어난 데서 비롯된 말이다. 김병로 선생은 이인, 허헌과 함께 3대 민족 인권변호사로 꼽힌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특별 재판부장과 초대 대법원장을 지냈다. 각 학교의 법률학 전문 교수와 독립운동가들을 무료로 변호하는 등 민족정신이 투철한 애국지사이다.

  최대교 선생, 김홍섭 선생 이 세 분은 대쪽 같은 성품에 청렴했던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곳 흐트러짐이 없는 법조계의 표상이어서 한국 법조계의 3성으로 받들고 있다. 다만 최대교 선생은 일제시대 고등계 수사관 출신이다. 광복 후 법관에 입명되어 법조계에 존경받는 인물로 공을 쌓은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의 친일 행적은 본인과 민족에 커다란 치욕이 아닐 수 없다. 극과 극의 상황 속에서 역사는 흐르며 자란다.

 

 # 전라도 전주 사람

전주 시민이 덕진공원을 내 집처럼 드나드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너른 평야권의 속성은 여유로움에서 오는 자유의지이다. 넉넉한 성품이 바탕이 되어 사색의 폭이 넓었으리라. 지성의 발달과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의식은 전라정신으로 그치지 않고, 늘 불씨가 되어 전국적인 운동으로 확산 되었다. 많은 민족운동의 동기부여에 일조했음이 꿰어진다. 우선 나 자신도 이런 기회가 있어 역사의 세포를 다지게 됨에 감사하다. ‘나는 전라도 전주 사람이다’ 정수리에 푸르디푸른 깃털 하나를 들이며 뜨거운 여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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