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1) 이용범 시인의 ‘지운 김철수·25’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11) 이용범 시인의 ‘지운 김철수·25’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0.06.2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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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운 김철수·25
 

 - 이용범

 

 김마리아는 삼일 운동 때 애국부인회 회장이었습니다

 결혼도 안 한 처녀였지요

 왜놈들한테 붙들려 모진 고문 당했어요

 그게 말입니다

 불 달구어 음부에 화火침針질 했다지 뭡니까

 수십 번 혼절 했다지요

 세상에 세상에 이런 못된 족속이 또 있을까요

 가출옥한 후 마리아는 미쳐버렸습니다

 모두들 안타까워했습니다 분노했고요

 나는 가슴이 아파 견딜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나와 혼담이 있었습니다

 결국 마리아는 죽고 말았습니다

 많이 울었습니다

 슬펐습니다

 그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리하여

 수십 년간 가슴에 마리아 사진 넣고 다녔습니다

 원채 안쓰러워서

 

 <해설>  

 지운 김철수 선생의 고향은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대수리입니다.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김철수 선생에게 추서 했습니다. 김철수 선생은 대수리 선산 모퉁이에 토담집을 스스로 짓고 ‘이안실(이만하면 편안하지 않은가)’이라 집 이름을 붙이고 살았습니다. 중국의 시인 도연명은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부르며 고향으로 돌아가 땅을 파고 밭을 일구었지만, 선생은 조선의 독립을 이루지 못한 자신을 스스로 죄인이라고 여기며 삶을 마칠 때까지 조국 통일에 대한 염원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용범 시인은 김철수 선생에 관한 연작시를 26편이나 썼습니다. 김철수 선생의 자료를 찾아 읽다 보면 가슴 아픈 일화들이 많습니다. 그 한 많은 사연들을 몸 밖으로 풀씨처럼 멀리 내보내고자 했으나 안타깝게도 울타리를 넘지 못했을 겁니다. 시의 중심 배경은 일제 강점기에 치열한 삶을 살았던 두 독립운동가의 애틋한 청춘 시절의 일화입니다. 청춘의 사랑을 한평생 가슴 한 복판에 품고 살다 간 노 혁명가는 김마리아를 기억의 선반에 고이 모셔두고 가끔씩 들춰보고 싶었을 겁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정신여고 학생들이 만세 운동에 참여했고, 일경은 그 배후로 당시 교사였던 김마리아를 지목하여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후 김마리아는 대한애국부인회장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고문을 당해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1923년 김철수 선생은 상해에서 독립운동가 김마리아를 만났습니다. 김마리아가 김철수 선생을 사모하자, 주위 사람들이 결혼을 권유했으나 선생은 단호하게 뿌리쳤습니다. 자신은 이미 결혼한 몸으로서 후처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겠지요. 훗날 김철수 선생은 해방되기 한 해 전, 안타깝게도 평양기독병원에서 병사한 김마리아를 생각하며, 사랑을 받아주지 못한 것을 평생토록 미안해하며 김마리아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고 합니다.

 

 강민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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