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전북문학기행> 7.작은 골목길과 오솔길을 오랜 헤멘 발자국들이 담겨있다 김정경 시인 -‘골목의 날씨’
<2020 전북문학기행> 7.작은 골목길과 오솔길을 오랜 헤멘 발자국들이 담겨있다 김정경 시인 -‘골목의 날씨’
  • 이휘빈 기자
  • 승인 2020.06.1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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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 노송동, 서학 동등 오래된 마을 따라 오래 걷는 시인의 발걸음 속에서 원주민들이 모습들이 담겨
김정경 시인 “낡고 낮은 건물들이 이웃해 있는 오래된 골목들이 점점 사라진다. 그것이 애틋하다”고 밝혀
전주시 동고산성 승암마을을 따라 전주천은 넓게 흐른다. 이 길을 따라 김정경 시인은 오래 걸었다. /이휘빈 기자

 전주향교부터 승암사를 향해 걷다 보면 전주천 옆에서 같이 흐르는 작은 길들을 마주할 수 있다. 이 길은 동네 주민의 산책로부터 집으로 서두르는 귀가길의 흔적마저 되고 있다. 길은 동고산성의 상류에서, 전주천의 지류에서 마주하며 꼬불치고 가파르다. 이 길을 오랫동안 걸으면 세상을 기준점에 붙여 재단하고 싶은 욕망을 버릴 수 있다.

 김정경 시인의 첫 시집 ‘골목의 날씨’에서 작품들은 주변 풍경을 넓게 훑기보다, 자그마한 골목들과 거기에 사는 사람·사물들을 향해 정을 주고 있다. 시인이 쓴 시 중 ‘골목을 잠그다’를 읽으면 중노송동 윤약국 네거리, 노송슈퍼 안주인 등에서 시인이 오랫동안 길을 걸은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시의 배경은 서노송동 동초등학교 인근이다. 시인은 재개발을 앞두고 노송동 주민들의 흔적은 푸념이나 한탄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빈 화분에 묻어 둔 싹 튼 고구마’ 같은, 길 한켠에 놓인 화분들에서 골목을 거닐며 골목을 닮아간 사람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전주시는 지속적으로 확장됐고, 마을 중 역사가 깊어진 마을과 새 마을들의 경계에 대해서 시민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골목길’이 그 정체성을 만든다는 것에 마을에 오래 살고 있는 사람들은 동의하고 있었다.

전주시 치명자산을 오르는 초입은 완만한 경사로가 햇살에 빛났다 /이휘빈기자
전주시 치명자산을 오르는 초입은 완만한 경사로가 햇살에 빛났다 /이휘빈기자

 시인의 발걸음은 오랫동안 그 정체성을 찾아 헤멨다. 시인은 “시집 속 스무 편 가까운 시가 천변에서 승암마을로, 다시 치명자산 성지에서 원색명화마을로 이어지는 길에서 시작되거나 다듬어졌다”고 말했다. 시인은 “북적이는 한옥마을의 골목을 거쳐 고즈넉한 승암마을을 지나고, 치명자산 성지 아래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을 때도 있었다. 갈림길이 나오면 안 가본 기을 내킬 만큼 걷다가 돌아왔다. 그 길에는 여행자·천주교 성지를 찾은 신자·농사짓는 노인·요양병원 담벼락 아래 삼삼오오 모여 운동하는 환자 등을 만날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시인은 사람 뿐만 아니라 고라니, 물고기를 마주하기도 하면서 길에서 있던 시간들을 녹여내었다고 말했다.

 시인에게 전주는 ‘시를 배우고 싶어 유학한’ 도시이기도 했지만, 네 번의 이사를 거치며 자리를 잡아가는 동네들이기도 했다. 시인은 “특별히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모두 오래된 동네의 주택들이었다. 그 골목의 풍경들이 시 속에 많이 녹아 있다”고 말했다. 시집 중 ‘바람난 골목·검은줄· 이 마을을 참으면 무엇이 되나’는 전주중앙중학교 담벼락을 거닐며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시인은 이제 전주의 골목에 대해 “낡고 낮은 건물들이 이웃해 있는 오래된 골목들이 점점 사라진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저는 그게 애틋하다”라고 말했으나, 한편으로 계속해서 골목길을 찾아 걸을 것을 약속했다.

 낡아가는 마을이 재개발로 닦이고, 허름하고 음침한 골목길이 사라져가는 것이 바르고 마땅해야 한다는 인식은 아스팔트처럼 단단하고 깔끔하다. 시인이 찾은 길들 사이에서, 몇 점의 쓰레기와 앞뒤로 오가는 발걸음 소리를 마주하며, 작은길들이 이 모습들을 지킬 수 있을지 생각했다.

 이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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