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얼굴] <37> 康東雲씨(강동운)...任實군 停年退任(정년퇴임)자
[자랑스런 얼굴] <37> 康東雲씨(강동운)...任實군 停年退任(정년퇴임)자
  • 김재춘 기자
  • 승인 2020.06.27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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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원으로 奉仕한 외길 31년


외길 31년.

 평생을 말단 공무원으로만 전전하며 봉직한 공직생활을 마치고 구랍 28일 정년퇴임한 康東雲씨(강동운·58)의 직명은 2종 지방고용원이다.

 康씨는 51년 임실군 덕치면 사회사무 보조원을 시발로 임시직인 촉탁, 입대한 공무원의 입대기간 동안을 메꾸는 기한부 공무원, 군정 새마을과 필경사 등을 임시직만을 전전하다가 1981년 3월에야 2종 지방고용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뛰어난 글솜씨로 군청의 중요서류는 그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고 사무처리 능력이 우수한 그는 남들 같으면 일찍이 정규직 특채라도 됐을테지만 곧은 성격은 아쉽게 부탁할줄을 몰랐고 가난한 살림을 꾸리려니 교제할줄도 몰라 말단에 머물수밖에 없었다.

 1930년 10월4일 임실군 관촌면 용산리에서 태어나 임실국민학교와 전주북중을 졸업한 그는 두 동생에게 진학의 길을 열어주느라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동생들의 학업을 뒷바라지 하며 자신을 희생했다.

 “말단의 박봉으로 동생들의 뒷바라지하고 3남3녀를 키우고 가르치려니 술·담배는 물론 헛돈 한 푼 안쓰고 살았지만 선친이 남겨준 유산은 다없애고 논 700평, 밭 500평만 남아 선친께 죄송하다”고 그는 술회한다.

 이제 퇴직한 그에게 병석에 누운 77세의 노모 金복임씨와 중풍으로 좌수족마비가된 부인 白명의씨, 그리고 대학에 재학중인 두 아들과 고등학생인 막내아들은 무거운 짐으로 퇴직이라는 경제력 상실을 용납하지 않는다.

 1973년 군정 새마을과가 생기면서부터 지금까지 임실군 새마을사업의 증인으로 말단의 자리를 지켜온 그는 “비록 하위직이었지만 열심히 일했다는 보람과 자부심으로 퇴임한다”며 후회없는 공직생활을 감사해 했다.

  
 글·사진 김규원
 옮긴이 김재춘
 1989년 1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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