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람에 산다] (9) 楓岳山(풍악산)精神療養院(정신요양원)...河千壽씨(하천수)
[보람에 산다] (9) 楓岳山(풍악산)精神療養院(정신요양원)...河千壽씨(하천수)
  • 김재춘 기자
  • 승인 2020.06.26 0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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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상처 어루만지기 26년
모든 財産털어 요양시설 건립
버림받은 삶의 代父

南原 楓岳山(풍악산)精神療養院(정신요양원). ‘고도로 발달된 현대문명속에서 인간의 정신은 차차 분열증 현상을 이르키고 있다’고 어느 학자가 한 말이다.

 이 말을 증명이나 하듯 우리 한국사회에도 나날이 정신질환자는 늘어만 가고 있다. 그러나 국가시설은 물론 전국내의 요양시설을 통털어도 정신질환자를 전원 수용하기에는 시설이 너무 미흡하다.

 정부는 1985년부터 국고 및 민자 2천억원을 투입해서 날로 늘어나는 정신질환자의 수용태세를 매년 늘려 1991년까지 총 3만6천500개의 정신질환자를 위한 병상을 마련한다는 전제아래 1984년에 ‘정신질환자관리종합대책’을 확정, 발표한 바 있으나 비례적으로 정신질환자의 수가 늘어나고 있어 국민의 1%라는 놀라운 숫자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통계 숫자나 정부의 방침에는 개의치않고 일평생을 정신질환자를 위해 살아온 한 숨은 정신질환자의 代父가 南原고을 조용한 계곡에서 묵묵히 26년간을 몸바쳐온 일은 세상에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천수씨

 南原시에서 순창방면으로 국도를 따라 4km쯤가면 서북쪽으로 꾸부어져서 6km쯤 되는 곳, 노령산맥의 맨끝, 楓岳山(풍악산) 중턱 양지 바른곳에 자리잡은 ‘楓岳山(풍악산)精神療養院(정신요양원)’을 이끌어온 河千壽씨(하천수·68).

 그는 평소 뜻한바 있어 정신질환자가 집단적으로 모여있던 계룡산을 찾아 논 16마지기와 밭 5마지기를 처분해서 마련한 돈을 가지고 1948년에 계룡산 붕어명당이란곳에 정신질환자의 요양소를 차렸다.

 당시만해도 환자들이 무지했고 난폭해서 환자를에게 낫으로 찔리고 돌로 맞아 몸 전체가 십여군데나 지금도 흉터가 남아 상처뿐인 영광만 안고 있다.

 그러나 10여년간 운영하던 그곳 요양원도 결국 재정난에 부딪쳐 포기를 하고 가족들을 데리고 1959년 봄 남원군 송동면 흑송리 요천강 노들강변에 호남갱생원을 차렸으나 2년도 못되어 남원 효기리 물난리때 몽땅 떠내려 보내고 현재의 위치로 옮겨 전가족이 뼈를 깎는 고초를 감수하면서 산비탈을 일고 가꿔며 농장을 가꾸어온 보람의 결실이 맺어지면서 요양원의 환자들도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해서 40여명까지 불어났다.

 그러나 불어나는 환자들 대부분이 보호자가 없거나 있어도 어느 때인지도 모르게 이사를 가버려 환자관리에 어려움을 많이 겪기도 했다.

 법인등록 후에는 사회복지사업자격증을 획득한 장남 정섭씨(正燮·39)가 원장직을 맡고 있으나 河씨의 끈질긴 집념으로 요양자의 40%에 가까운 환자들이 무의탁자들이지만 그들을 내가족처럼 이끌어 오고 있다.

 풍악산 정신요양원을 차린후 금년까지 2,300여명이 이곳을 거쳐갔고 요양중 완치되어 사회에 복귀한 사람도 92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젠 옛날 흙벽돌담집도 모두 철거하고 현대식 콘크리트 2층건물이외에 3동의 요양막사로 제반문화시설도 갖춰 명실공히 요양소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현재 수용되어 있는 환자는 남자 160명, 여자 46명으로 도합 206명이 수용되어 있으며 환자들의 입원 분포상태는 중질환자가 40%, 경질환자가 60%로 되어있다.

 이들은 거의가 병원을 찾아다니다 지치면 이곳으로 보호자들이 데리고 오고 있기 때문에 중환자가 많은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들에게 河씨는 꼭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물리적 치료방법으로 요양을 시키고 있으며 1개월에 2회정도 의사를 초청, 진료를 시키고 있다.

 모든 환자들을 우리 가족이라고 일컫는 河씨는 친동생이나 자식같이 대하고 있는 그의 심성에는 보통사람들이 해낼수 없는 어떤 강한 집념이 온몸 가득히 채워진 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눈감을때까지는 이 사업이 자신에게 주어진 천직이라고 말하면서 “어서 우리사회에도 이처럼 불쌍한 환자들의 숫자가 선진국 수준으로 낮아져야 한다”고 강변을 털어놓고 있다.

  
 김형열 記
 김재춘 옮김
 1989년 1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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