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달과 백제의 달…거울처럼 마주한 블루 ‘이흥재 사진전’
신라의 달과 백제의 달…거울처럼 마주한 블루 ‘이흥재 사진전’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0.06.1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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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재 작 - 당신을 찾지 못했어요

 신라의 달과 백제의 달이 거울처럼 마주하고 있는 풍경이 낯설게 신비롭다. 경주의 고분과 전주의 모악산이 서로를 지켜보며 하나가 되어가는 풍경. 달빛 조명 아래 묵묵히 드러난 이 낯선 풍경은 지역적 특성이 짙은 장소의 분위기까지도 상쇄시킨다. 어딘지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 ‘월광산수(月光山水)’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다.

 이흥재 작가가 21일까지 한국전통문화전당 3층 기획전시실에서 ‘월광산수, 그 심연의 공간 - 달빛으로 담다’를 선보인다.

 한국전통문화전당 기획초대전으로 마련된 이번 전시에서는 전주 한지에 인화한 작품을 선보인다. 사진 인화지 대신 전통 한지에 인화된 사진은 그 심연의 깊이가 남다르게 표현된다. 해가 지고, 해가 뜨기 전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본 풍경과 그 찰나의 긴장감, 셔터를 누를 때의 짜릿함, 그리고 황홀함까지 담는데 전통 한지의 맛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이흥재 작가는 최근 몇년 사이 ‘트와일라이트 블루(Twilight Blue)’의 매력에 푹빠져있다. 밤의 달빛과 새벽의 여명처럼 자연을 조명 삼아 은밀하고 고요한 풍경을 찾아다니는데 정성을 쏟고 있는 것이다. 기다림의 시간은 길지만, 참으로 경이로운 시간들이다.

 짙은 블루와 회색의 여명 속에 드러나는 장소들은 어딘지 알 수 있지만, 어딘지 모를 신비로운 감성으로 다가온다.

 사진 속 검은 블루를 한 걸음 더 가까이 혹은 한 걸음 더 멀리서 하염없이 바라보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를 가늠하기 힘들다. 호숫가이며 저수지, 물 위에 어른거리는 나뭇가지와 낙화한 벚꽃잎들 또한 뭍과 물을 혼동케 한다. 조용히 드러나는 검푸른 공간이 산과 물, 나무와 꽃을 결국엔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개와 늑대의 시간에는 선과 악의 분간도 의미가 없게 되지 않을까?

 이러한 낯선 산수를 엿보는 일은 역시 혼자서가 제격이다. 작가는 모두가 숨죽인 그 시간의 적막함와 고요함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시공간의 조도도 최대한 낮추었다. 관람객들은 그렇게 희미한 블루의 여명에 몸을 맡겨 편안하게 밤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가장 깊은 색, 블루에 초대된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월광산수와 작가의 내면, 그리고 관람객의 시선이 수평을 이룬다. 그렇게 모두가 하나가 된다.

 전영백 홍익대 미술대학 교수는 “새벽녘이나 늦은 저녁의 어두움 속에서는 사물과 풍경의 화려한 색들이 잦아들고, 검푸른 밤의 색에 흡수된 삼라만상은 수묵 담채의 블루로 혼연일체가 된다”면서 “달빛이 만든 음예의 공간은 블루의 휘장 속에서 개별성을 감춘 채, 자연의 은밀한 몸체와 부드러운 피부를 엿보게 한다. 그늘도 그림자도 아닌 거무스름한 음예, 그 검푸른 빛은 모든 다른 것들을 너그럽고 넉넉하게 하나로 덮고 있다”고 평했다.

이흥재 작가는 전북도립미술관장을 역임하고, 현재 정읍시립미술관 명예관장, 무성서원 부원장, JTV 전주방송 ‘전북의 발견’ 프로그램 진행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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