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문 자리가 아름다워지려면
머문 자리가 아름다워지려면
  • 김동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0.06.10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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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 만물은 시간의 흔적을 남긴다. 그 시간의 흔적을 쫓아 연구하는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천문학, 역사학, 고고인류학, 물리학, 인문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로 나뉜다. 수많은 흔적은 자신을 알아달라고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것에서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찾아낸다. 흔적은 우리의 뒷모습과 같다. 앞에서 보는 모습보다는 뒷모습에서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자신의 뒷모습에 관심을 기울여야 함에도 사실 그게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대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앞모습에만 신경을 많이 쓰고 보이지 않는 뒷모습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우주 만물은 대부분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시간의 흔적을 남긴다. 반면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은 시간의 흔적을 남기지도 못하면서 없애버리거나 지워버린다. 이것은 대개 자신이 걸어온 과정이 아름답지 못한 국가, 지방자치단체, 기업, 개인 할 것 없이 모두 마찬가지이다.

 만물은 영속할 수 없어 언젠가는 자신이 머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다. 100년 안팎을 사는 인간은 말할 것도 없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무수히 많은 자리에 머물렀다가 떠나게 된다. 자신들이 머문 자리도 잠시 머무는 것이라 그곳을 떠나면 각자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있었던 자리에 흔적을 남기고 떠난다. 그러면 다른 누군가 그 자리에 머물면서 흔적을 남기고 간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대부분은 자신이 머물다 간 자리를 없애버리고 싶거나 지워버리고 싶은 자리가 아닌 아름다운 자리로 남길 원한다.

 우리가 있었던 자리가 언젠가 떠나야만 하는 자리라면, 우리가 머문 자리는 아름답게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사람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우렁이에게는 바닥이 자기 자리이고, 나비에게는 꽃잎이 자기 자리이다. 구름은 하늘이 자기 자리이고, 새들에게는 나뭇가지가 자기 자리이다. 움직이지 못한 나무나 돌멩이에는 자기가 있는 곳이 자기 자리이다. 이들은 자기 자리를 알고 그 자리를 소중하게 지킨다. 우렁이는 땅바닥을 기어다니면서 잡초를 제거해주고, 나비는 식물들이 열매를 맺게 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구름은 사람들에게 그들과 시원한 빗줄기를 선사하는 것으로 자기의 역할을 다하고, 새들은 열매나 곤충을 먹고 넓은 곳에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도록 도움을 준다. 나무나 돌멩이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기에 만물은 아름답다.

 우리가 늘 머무는 자리가 있다. 화장실이다. 많은 사람이 같은 자리를 이용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늘 깨끗하여야 할 공간이 공중화장실이다. 공중화장실에는 낙후된 화장실 문화를 바꾸기 위해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홍보 글귀가 붙여져 있다.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가정화장실처럼 이용한다면 머문 자리가 아름답게 변할 것이라는 희망이 담겨 있다. 이와 비슷한 말이 중국 당나라 때 임제선사께서 말씀하셨던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다. 수처(隨處)란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환경이고 삶터이다. 작주(作主)란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주체적으로 살라는 뜻이다. 즉 이 말은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돼라, 지금 있는 그곳이 진리의 자리이다”라는 뜻이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일을 하든 늘 진실하고 주체적이며 창의적인 주인공으로 살아가면, 그 자리가 최고의 행복한 세계라는 가르침이다.

 화장실이 그 출발점이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아무리 낮고 보잘것없는 자리에 머물렀던 사람도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기억하며 추억한다면 그가 떠난 자리는 아름답고 향기가 나는 자리다. 반면에 높은 관직에 앉아 있던 사람이나 돈 많은 사람이 머물던 자리도 지나친 욕심 때문에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국가나 기업을 망하게 하여 대중들로부터 경멸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면, 그가 떠난 자리는 아름다운 자리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자신이 머문 자리를 치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이 머물던 자리를 되돌아보며 마음속으로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부끄러운 일을 하였다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서산대사께서는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라는 시를 남기셨다. 이 시는 “눈 덮인 들판을 지날 때 발걸음을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이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매사에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름다운 흔적이나 아름답지 못한 흔적이나 모두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다. 고통을 받고 즐거움을 받는 주인은 바로 자신이다. 그러한 고통과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주인도 다름 아닌 자신이다. 공공장소뿐만 아니라 어느 자리에서든 내가 머문 자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정리할 줄 아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한다.

 김동근<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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