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사회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공정한 사회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 김우영 전주교육대학교 총장
  • 승인 2020.06.09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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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신문 지상에서는 진보와 보수 논쟁이 예전보다는 치열한 것 같지는 않다. 최근 진보와 보수를 정의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 과거 보수와 진보 기준은 자유와 평등, 어떤 가치를 강조하느냐에 따라서 매우 분명하게 구분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어느 개인도 자유와 평등, 정의의 가치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들의 정치적 입장을 명료하게 보수와 진보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자유주의자들은 18세기 이후 자명한 것으로 믿어왔던 개인적 자유를 유지하는 동시에 어느 수준의 사회적 정의를 성취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난관을 극복하고 쟁취해온 개인적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좀 더 평등하게 사회의 부를, 더 큰 몫의 재화를 분배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 문제는 자유방임 사회가 결과한 부의 심각한 불평등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고, 이에 대한 불만이 또한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 요인이 되었기 때문에 제기되었다. 자유주의 사회는 사회주의적 평등의 요청을 부의 재분배를 목적으로 하는 복지제도와 누진세제 등 다양한 정책을 통하여 수용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논란이 되는 것은 개인 선택의 자유와 평등주의적 재분배를 어느 수준에서 조화시킬 것인가의 문제이다. 타인의 자유와 양립 가능한 최대한의 자유에 대한 평등한 권리는 자유주의의 일차적인 원칙이다. 불평등의 완화를 위한 다양한 제도들은 세금을 통한 재원으로 마련되기 때문에, 부의 재분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누가 어떻게 재원을 부담할 것인가이다. 재분배 정책을 제안할 때마다, 근로자들과 자영업자, 기업과 부자들에 대한 증세가 논의되는 이유는 최소 계층과 미취업자, 가난한 은퇴자들은 세금을 부담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개인 선택의 자유와 재화의 평등주의적 분배는 상충되어 보이지만, 개인의 자유에 대한 평등한 권리가 의식주, 교육을 위한 기본 재화의 소유가 없이 보장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상충되지는 않는다. ‘배고픈 사람이 빵집을 지나가다가 김이 나는 빵을 먹고 싶은데, 돈이 없다면 그 사람에게 무슨 자유가 있겠느냐’는 말은 형식적인 자유보다는 자유의 실질적 가치를 강조하는 말이다. 자유의 실질적 가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의식주, 교육을 위한 기본 재화에 대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유의 실질적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기본 재화의 수준을 정하고, 지원 대상과 재정 부담의 대상을 정하는 것은 결국은 공정성의 문제로 귀결된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한 권리의 조화를 위한 문제는 어떤 기준이 공정한가의 문제이고, 오늘날 우리가 다른 무엇보다도 공정의 가치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궁극적으로는 기본적 재화에 관한 이익과 부담의 분배에서 기준의 공정성이 주목을 받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대학 입시에서 중요하게 논쟁되는 것도 공정성 문제이다. 대학 입학 전형에서 수시 중심인가 수능 중심인가의 논쟁은 어떤 방식이 가난한 학생들의 대학입시 경쟁에서 공정한가에 대한 의견의 차이에 있다. 재난 지원금을 분배하는 방식에서 하위 70% 국민에게 지급하는 것과 100% 국민에게 지급하는 것에 대한 논쟁도 공정성에 대한 논쟁이었다. 최근 진보와 보수의 논쟁에 무관심한 20대들도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세대 간 분배의 공정성 문제에는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 재화에 대한 이익과 부담을 어떤 기준에서 분배해야 하는가의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논쟁은 회피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어떤 개인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좋든 싫든 어떤 공정의 기준에 합의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좀 더 자신들을 상대방의 입장에 두고 생각해 보거나, 공평무사한 입장에 두어야 한다.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위한 논의가 공허하지 않기 위해서는 공정성에 대한 논의가 정책을 결정하는 중심적인 가치 논쟁이 되어야 한다.

 김우영<전주교육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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