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9) 우남정 시인의 ‘꽃에 대한 예의’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9) 우남정 시인의 ‘꽃에 대한 예의’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0.06.07 12: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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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 대한 예의 

              - 우남정

 

 시들어버린 꽃을 버릴 때

 아직 향기가 남아 있는 저 꽃잎은 어쩌나

 아직 푸른 잎 매달린 저 뻣센 줄기는 어쩌나

 그것들 순하게 썩어버릴 동안

 기다려줄 땅 한 평은, 어디에 있나

 

 오래 입은 속옷을 버릴 때

 두 개의 젖무덤을 감싸던 브래지어

 꽃물 빠지기도 전 얼룩진 속곳에 남아 있는

 저 미열은 어디로 가나

 

 <해설>  

 개미 한 마리도, 눈물 한 방울도, 소홀히 보지 않는 시인의 따스한 서선과 섬세한 마음의 결이 그대로 느껴지네요. 축하의 선물로 받은 꽃다발은 그 사람이 건네준 사랑의 절정입니다. 꽃병에 꽂아두고 그 향기와 의미를 음미할 때 그날의 기쁨이 여운으로 번져가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 꽃다발이 시들어 버리려고 할 때, 미열처럼 남은 생의 온기와 마주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입었던 속옷을 버리려고 할 때도 우리는 얼른 버리지 못하고 망설이게 됩니다. 내 속살을 닿았고, 내 몸에 일부분을 가려 주었고, 내 가슴의 맥박을 견디어 준 속옷을 아무렇게나 쓰레기통에 버릴 수는 없지요. 아마도 그것은 내 몸에 닿았던 생의 치열함과 숙연함이 스며있기 때문일 겁니다.
 
 시인은 꽃이 지는 모습을 따뜻하게 바라볼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젊고 아름다운 것에 가치를 두면서, 유용한 것만을 선호하지 말자고’ 하네요. 하기야 그렇지요. 우리가 지금까지 무심코 버리는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요.

 영화의 용어로 말하자면 롱테이크처럼 천천히 그리고 따뜻하게 그들의 뒷모습에도 눈길을 주는 시간이 필요 하겠네요. 우리가 한때 그것들을 사랑하고 열광했으므로.
 
 

강민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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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모 2020-06-09 22:00:01
멋진 詩와 멋진 소개글...
잘 감상했습니다.
덕분에
가벼운 마음되어 갑니다.
양신혜 2020-06-08 11:39:12
꾸준히 올려주시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덕분에 노안을 이유로 외면했던 좋은 글 접할수 있어 감사하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