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오면
6월이 오면
  • 황현택
  • 승인 2020.06.0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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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이 오면.

 6월이 오면 나는 잊지 못할 큰집 故 황인택 지 묘를 찾아간다.

 이 묘는 집안의 장손으로 촉망 받던 형의 묘소로 전사소식은 1955년 늦은 가을이었다. 당시 형은 제대 3개월을 앞두고 육군 백골부대 3사단 헌병으로 근무하면서 사고 당일 인제 진입로 야간 차량통제 하다가 불법군수물자 유출 범인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부대장의 설명에 온 가족들은 치를 떨며 통곡하던 일이 엊그제 같건만 어느새 회수가 가까워 오니 세월의 무상함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촌 막내 동생인 나와 장손인 큰집 형은 특별한 인연이다.

 나와 형하고는 13살의 나이 차 때문에 그럴는지 모르지만 형은 친동생보다 나를 좋아하고 사랑했다. 형이 군대 갈 때는 한국전쟁이 심할 때라 군대 가면 죽는다는 말이 퍼져 기피자가 심할 때다. 형은 기피생활 조금 하다 자원입대 하였었다.

 나는 그런 형을 좋아했고 입대하러 갈 때는 솜리(이리)까지 나가 출영식을 보러 가기도 했다. 그리고 큰집 형은 경북 영천 헌병학교에서 고된 교육을 받고 일선 3사단에서 군 이탈자와 군대질서를 잡는 군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때 추운 겨울이 오면 학교에서는 국군 아저씨들에게 위문편지를 썼다.

 나는 위문편지를 받을 수취인이 있어 행복했었다.

 큰 집형이 입대 후 갈매기 세 개(상병) 달고 첫 휴가 왔을 때다. 그때는 내가 4학년 때다. 형의 첫 휴가를 나는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가 본 국군 아저씨들 중에서 가장 잘생긴 군인 권총과 헌병모와 흰 줄 견장에 번들번들 긴 군화, 국방색 사지에 칼날 주름진 바지는 장형님을 이 세상 가장 자랑스러운 군인다웠다.

 거기에 형님이 사온 선물이 어쩜 사촌 동생을 위해서 사온 선물 보따리였다. 선물은 순전히 내가 쓴 위문편지에 대한 답장과 어린 동생을 칭찬하는 선물이었다. 그런데 친동생인 큰집 막내 형이 문제였다.

 큰 집 막내 형은 나보다 두 살 위인 6학년 형이다. 그런데 친동생의 선물은 사촌 동생도 받은 군대 건방 1봉지에 볼펜 1박스다. 내 선물 장화홍련전과 장발장 책 선물, 하모니카에 비하면 약소했다.

 이를 두고 큰 누나가 “오빠는 우리 막내 동생은 미운털 박혔어”라고 불만을 터트렸다. 이에 큰집 막내도 울음을 터트리고 방문을 나갔다.

 큰어머니도 섭섭했던지 ‘아무리 위문편지 안 보냈다고 그렇게 표시 나게 선물했느냐고 나무란다.

“어머니,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법입니다.” 우리 집 막내도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작은 집 막내처럼 책도 읽고 위문편지를 보냈어도 큰형이 이렇게 했겠습니까?”

 온 가족이 말없이 침묵이 흐를 때 어머니가 나섰다.

 “막내야, 넌 아직 하모니카 못 불지 큰집 막내 형 줘”

 나는 어머니 말씀에 번쩍이는 하모니카를 토라진 형에게 내밀며 말했다.

 “형, 나 이 하모니카 필요 없어. 형이 불어”라고 말하며 건네주었다.

 이러한 나의 태도에 온 방 안은 칭찬의 박수가 퍼졌고 선물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 선물 사건이 나도, 우리 집안 모두도 장손 헌병 황인택 하사와의 마지막 하직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귀대 후 여섯 달 국방의무 충실하게 이행하다 전사한 것이다.

 큰형의 유골은 그동안 선영 묘소에 헌병모 및 각종 유품과 같이 안장되었다가 5년전 임실 현충원 6·25 참전 한국전쟁 유공자 묘원에 안장되었고 4촌 동생은 예나 지금이나 묘비 앞에 빨간 장미에 안개꽃 둘러싼 꽃다발로 정의로운 형님의 전사에 큰절 올린다.

 
 황현택 <전북평생 독서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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