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지도(風流之道)
풍류지도(風流之道)
  • 김동수
  • 승인 2020.06.0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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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류(風流)’란 바람 ‘풍(風)’자와 물 흐를 ‘유(流)’자가 합쳐진 글자다. 하지만 단순한 바람과 물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자연성(自然性)’을 지칭하는 도(道)이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그 뜻이 단순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풍류에 대한 해석도 구구하다.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 ‘아취(雅趣)가 있는 것’ 또는 ‘속된 것을 버리고 고상한 유희를 하는 것’ 등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풍류를 풍속의 흐름으로 보아, 문화와 같은 뜻으로 보는 이도 있고, 음풍농월처럼 자연과 인생과 예술이 혼연일체가 되어 운치 있게 살아가는 삶이라 풀이하기도 한다.

 아무튼 풍류란 자연을 가까이하여 자유분방하면서도 멋있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 말이 맨 처음 등장한 것은 신라의 최치원 선생이 쓴 ‘난랑비서문(鸞?碑序文)’이다.

 나라에 현묘한 도(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이 교(敎)를 베푼 근원에 대하여는 선사(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거니와, 실로 이는 삼교(三敎)를 내포한 것으로 모든 생명과 접촉하면 이들을 감화시킨다 (國有玄妙之道?曰風流?設敎之源?備詳仙史?實乃包含三敎?接化群生)

 -『삼국사기』 진흥왕 편

 신라 당시에 있었던 현묘지도(玄妙之道)가 곧 풍류인데, 그것은 유·불·선 삼교를 포함하였다는 것이다. 아욕(我慾)에서 벗어나 인간의 본성인 예로 돌아가자는 유교의 극기복레(克己復禮)와 아집(我執)을 버리고 일심(一心)으로 돌아가자는 불교의 귀일심원(歸一心源), 그리고 인위적인 것을 떠나 자연의 법도를 좇아 살자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교가 그것이다.

 이렇듯 삼교의 본질은 다 같이 이기적 자아를 버리고 우주적 자아로 돌아가 천지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이다. 그러기에 풍류도의 핵심은 하늘과 인간이 하나로 융합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세계로 서양의 이원론적 사유구조와는 다르다. 하느님의 나라와 인간 세상이 하나로 이어져 있기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보이고 들리지 않으면서도 들리는 것을 추구한다. 이는 인간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널리 천지만물과 함께 광명이세(光明理世)하는 우리의 건국이념 홍익인간(弘益人間)과도 다르지 않은 경천애인 사상이다.

 이러한 풍류사상이 조선조에 이르러 술 마시고 거문고나 타면서 노니는 일부 양반들의 한량문화로 변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원래 풍류란, 최치원의 언급처럼 현묘지도로서 그 지향하는 바가 어떤 근원적인 것, 원본(原本)적인 것과 닿아 있어야 한다.

 인간 중심의 이기심(利己心)을 버리고 천지자연과 서로 상통하는 현묘지도(玄妙之道)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한 방편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을 초탈,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 선비들만의 문화가 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풍류는 오랫동안 우리의 피 속에 스며들어 우리의 흥이 되고 춤이 되어 우리와 함께 살아온 한민족의 전통사상이요, 또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고요한 정(靜) 속에서도 움직임(動)이 있고, 하지 않은 무위(無爲) 속에서도 함이 있는 감춤과 여백의 미학이 되어 타성화 된 우리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정신적 근원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정신들이 한국인들의 기층문화가 되어 풍광이 좋은 곳에 정자(亭子)를 짓고, 정원을 가꾸고, 산수화를 걸어두고, 봄철이면 화전놀이를 하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갔다. 그러한 풍류문화가 오늘날 정신보다는 물질을 중시하는 과시적 소비문화에 밀려 우리의 삶 속에서 잊혀 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의 피 속에 아직 흐르는 풍류기질과 그 정신은 시대의 변화에도 끊임없이 그 시대에 맞는 풍류가 되어 이어져 갈 것이다. 형체가 없는 것에서도 형체를 보고,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에서도 소리를 들어 자연과 인생과 예술이 하나로 공존하고 일체화되는 한민족의 삶. 그리하여 하늘을 섬기며 자연과 더불어 이웃과 평화롭게 살아가는, 그것이 곧, 풍류(風流)가 지향하는 천손(天孫)들의 삶이 아닐까 한다.

 김동수<시인/전라정신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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