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곡의 노래는 엽서 같아서]<12> 길 위에서 죽다
[한곡의 노래는 엽서 같아서]<12> 길 위에서 죽다
  • 이길상 시인
  • 승인 2020.06.02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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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리라는 말을 경멸했다. 제국주의 침략자들도 자신들의 침략 논리를 정당화하면서 약소국을 지배했던 게 아닌가. 문명의 성장과 발전의 이면엔 식민지를 착취한 자본주의의 맨 얼굴이 숨겨져 있다. 인간적인 것은 이 세상에 없다. 비인간적인 정치와 회유와 물질적 만족만이 있을 뿐. 난 도시의 부산물인 편의점을 멀리했다. 겉만 번드레한 허식이 싫었고 진짜로 위장한 가짜들이 싫었다. 보잘 것 없는 것들이 피워 올린 희망을 찾아 길을 떠돌고 싶었다. 난 길에서 떠돌다 길에서 죽으리라.

 20대 때, 팻 메시니 음악만 들었다. 도시의 주변부를 배회하며 떠돌아다니던 이방인, 황량한 현실과 그곳에서 겪은 일들을 음악을 통해 이야기하던 사내. 팻 메시니의 음악의 모티브는 길, 여행자, 세속세계와 절연된 풍경과 사람들이다. 팻 메시니는 길을 탐하는 자다. 그는 길의 감식자다. 길 위에 서면 어떤 무한 같은 것을 느꼈다…… 어쩌면 그것은 무능력자의 허세고 치기 어린 낭만이고 자기도피일 수 있지만 때론 세상과 쉽게 타협하고 싶지 않던 감정은 그 감정만으로도 힘이 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 그들이 창출해 낸 문화와 자유는 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주변부를 헤매는 자의 서글픔이 그의 기타 연주에 배어 있었다. 외롭기도 했지만 왠지 뿌듯했다.

 일이 자꾸 꼬인 한 학생을 만났다. 너무 성급하면 일을 더 그르칠 수 있어. 차분히 생각을 정리한 후 행해도 늦진 않아! 분명 뒤늦게 움직여 덕을 볼 수도 있다. 왜 덕을 보는지 얼른 대답을 할 수 없었지만 다시 물어도 뭐라 달리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학생의 얼굴에서 어떤 쓸쓸함과 허전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순간 쇼윈도의 가짜 희망들과 대충 거래하며 살아가고 있는 나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이 세상에 급작스러운 것은 없다. 편의점이 사라진다 해도 사람들은 놀라지 않는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다시 손잡는다면 그것은 놀랄 만한 일을 만들어 내고도 남는다. 편의점이 사라진 자리에 가공의 또 다른 편의점이 생길 것이다. 개점 첫날부터 사람들로 북적일 것이다. 사고, 우발, 방심 등을 말하는 순간 난 사회가 정한 잘 닦인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곳에선 뭘 해도 불행했다. 누군가 말했다. 저항하면 너에게 불리하다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자는 어떤 길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오른쪽도 길이 아니고 왼쪽도 길이 아니니까.

 여행 가방을 챙겼다. 너 갔다 오면 할 일은 있어? 안 돌아올 거야! 차츰 내 생도 빛을 잃고 사라질 것이다. 사라진다 할지라도 작고 사소한 것의 가치를 찾아 사막이든 그 어디든 떠나고 싶었다. 20대 때의 치기 어린 말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평생 안 돌아올 거다. 진리의 끝에 뭐가 있는지 보기 전엔 절대 안 돌아와! 팻 메시니의 몽상적인 기타 연주가 마침 워크맨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Are You Going With Me?'를 듣는 밤…… 어둠이 손짓한다. 나와 함께 가자. 고독감이 순식간 빨려들어온다. 처음 맛본다. 이 환한 고독감……

 글 = 이길상 시인

 ◆이길상

 전북 전주 출생.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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