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전주 문화콘텐츠 시작 후백제 제대로 알자
천년전주 문화콘텐츠 시작 후백제 제대로 알자
  • 이방희 기자
  • 승인 2020.06.01 1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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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자존시대 연다> 11) 후백제 외교 역동성과 역사연구

진안 도통리 초기청자, 고려청자 제조기술로 발전 개연성 찾아야
후백제학회·후백제-태봉 역사벨트 구축 세미나 등 활용 필요

  ‘천년전주’가 자랑하는 문화콘텐츠는 대부분 조선시대 문화로 한정되고 있는게 사실이다. 천년을 이어온 전주 역사의 저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후백제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무지의 결과이다. 또한 왜곡되고 승자의 논리로 묻혀버린 후백제 문화를 우리것으로 만들지 못한 수치의 한 부분이다. 그래서 천년 전주의 역사적 정통성을 공고히 하면서 전주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고 도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줄 과제가 대두된다. 후백제가 누렸던 국제외교를 통해 후백제인이 후손으로써 자긍심과 자존감을 찾아가길 기대한다. 다행스럽게 후백제학회가 출범하여 발굴연구와 함께 역사의 한 주인공 반열로 삼기위한 작업들이 펼쳐지고 있다. 또한 동시대의 문화와 역사를 이뤘음에도 제대로 대접받지못한 태봉지역인 강원도와 공동연구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기대가 크다.

 

 #후백제와 오월의 외교

 일찍부터 강과 바다는 해양문물 교류에 커다란 대동맥이었다. 후백제 전주는 인접한 금강과 만경강, 동진강의 내륙수로와 바닷길을 따라 해양문물교류의 인프라가 충분했다. 선사시대의 교역망, 고조선의 철기문화 전래, 백제시대 해상 실크로드 관문 역할이 이뤄진 곳이다. 이러한 이점을 살려 후백제시대 견훤이 대중국과 외교 교류를 한 나라는 오월국(吳越國)과 후당(後唐)이었다. 후백제는 이 교역통로를 통해 중국청자를 수입하는 등 활발한 교류를 펼쳤다. 이러한 교류는 당연히 청자 제작기술 전래로 이어졌을 개연성을 두고 있으며 비색청자와 상감청자로 대표되는 고려청자 제조기술로 이어졌다는 추론이 가능하다는 관련분야 학자들의 주장이다.

 #진안 도통리 초기청자 요지

 후백제가 구축해 놓은 외곽 방어선 안쪽에 진안 도통리 초기청자 요지가 있다. 호남정맥 마치(만덕산)를 넘으면 진안 도통리·외궁리 초기청자 요지에서 후백제 도읍인 전주에 이른다. 이와함께 후백제 전주성으로 밝혀진 동고산성에서 발굴된 초기청자 또한 진안 도통리 초기청자와의 유사성으로 그 운영주체가 후백제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남원 실상사와 익산 미륵사지, 임실 진구사지에서 출토된 초기청자 또한 후백제와의 관련성이 높아 그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37년이라는 짧은 후백제의 역사만큼이나 진안 도통리 초기청자 제조기술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채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후백제학회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꽃피웠던 강력한 국가였던 후백제가 패자의 역사로 치부되어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승자들이 남겨 놓은 역사 기록에도 철저히 외면 받았고 심지어 왜곡되기까지 했다. 후백제의 역사는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졌으며 역사연구에서 외면받기 일쑤였다.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고 역사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데 모아져 후백제학회가 지난 2019년 8월 30일 출범했다.

 후백제학회는 1100년 전 후삼국 중 가장 강력한 세력을 기반으로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했던 후백제의 모든 것을 복원, 후백제에 대한 다양하고 심층적인 연구를 하자는 의미로 태동했다. 후백제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학술대회와 시민 강좌 등 다양한 학술활동을 펼칠 계획도 담았다. 후백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이 구축되고 나아가 올바른 역사 가치관 공유를 통해 전북도민의 자존감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지난 1년동안 후삼국 중 가장 강력한 후백제가 고려에 멸망 당한 뒤 그 찬란했던 역사와 문화가 잊혀지고 상당부분 왜곡되면서 부정적 인식이 팽배했던 측면과 학술적 성과 역시 많지 않았던 점을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들이 있었다는 평가다.

 

 #후백제-태봉 역사벨트 구축

 한국사에서 후삼국의 시대구분은 불분명하다. 송화섭 중앙대 교수는 “후삼국이 국사인데도 연표에서 후삼국시대가 사라졌고 후삼국의 국가명칭도 혼란스럽고 후삼국을 국가가 아닌 반란집단으로 서술해놓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후삼국이라면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건국 시기 사이를 존재했던 태봉과 후백제로 국호, 연호, 왕명, 연대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역사를 통일된 체계적인 역사 기술이 되어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후백제와 철원의 천년전 역사문화를 잇는 연구와 동질성을 찾아 공동사업을 펼치자는 주장이 있었다. 그 주장이 힘입어 그동안 한국사 연구에서 주목받지 못한 후백제와 태봉이 전주와 철원을 도읍으로 하여 위상을 떨쳤음에 주목하여 두 국가 및 지역을 엮어 재조명하고 이를 국책사업으로 확장시키기 위해 공동 세미나를 지난 4월 24일 개최했다. 전북연구원 전북학연구센터(이하 센터)와 강원학연구센터가 공동으로 연 ‘후백제-태봉 역사벨트 구축’ 세미나였다. 국토균형발전의 공감대를 형성하여 전북과 강원을 잇는 사업을 발굴하고 강호축사업의 사회적 토대를 마련하는 자리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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