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8) 배창환 시인의 ‘가난하지 않기 위하여’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8) 배창환 시인의 ‘가난하지 않기 위하여’
  • 강민숙
  • 승인 2020.05.31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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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하지 않기 위하여

 - 배창환

 

 가난하지 않기 위하여

 큰 꽃은 큰 꽃을 달고

 작은 꽃은 늦가을에 죽을 힘 다하여

 작은 꽃이라도 피워 올린다

 

 가난하지 않기 위하여

 큰사람은 큰사람으로 살고

 작은 사람은 젖 먹던 힘 다하여

 아이도 낳고 돈도 벌면서

 처마에 작은 연등 하나라도 애써 밝힌다

 

 어떤 이는 돈을 남기고

 어떤 이는 남부럽지 않을 자식을 남기지만

 또 어떤 이는 가슴에 그늘 깊은 나무를 심고

 따뜻한 시를 남기고, 뒷사람이 찾아 밟을

 눈길 위에 곧은 발자국을 남긴다

 해 뜨면 곧 녹아 사라져 없어질지라도

 

 가난하지 않기 위하여

 가난한 이들은 어둔 밤 귀갓길 골목 어귀에

 낯익은 별무리 찾아 띄워 길을 밝히고

 키 낮은 담장 아래 볕살 닿는 자리마다

 시간의 긴 터널 건너온 여문 꽃씨를 뿌려 거둔다

 

 <해설>  

 시인은 처마에 켜 놓은 작은 연등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훤히 희망을 심어주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불빛의 소중함을 알기에 꺼뜨리지 않기 위해서 어둠에서도 잠들지 않고 깨어 있어야 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꽃도 사람도 무한의 시공에 잠시 실뿌리 하나 내려놓고 살다 가는 존재이지만, 시시각각 최선의 길을 선택합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최선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에게 ‘최선’이라고 믿는 길을 찾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진심으로 사랑하고, 다른 이를 위해 나무를 심고, 꽃씨를 뿌려 가꾸려합니다. 어두운 밤 귀갓길 골목 어귀에 낯익은 별을 찾아 길을 밝힙니다. 시인 역시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웅숭깊이 사유하면서 최선을 선택했기 때문에 시가 아름답고, 절실하기까지 합니다.
 

 이 시를 처음 접할 때는 문득 ‘내가 과연 잘 살고 있는가’ 이런 생각이 들었지요. 그러나 여러 번 읽으니, 요가의 음악을 듣는 것처럼 긴장됐던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한 위로를 받습니다.

 이 시는 시의 제목을 ‘초라하지 않기 위하여’라고 고쳐 읽어도 좋을 듯했어요. 

 

강민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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