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에 음수사원(飮水思原)을 생각함
호국보훈의 달에 음수사원(飮水思原)을 생각함
  • 이강안
  • 승인 2020.05.31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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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수사원(飮水思原). 물을 한 모금 마셔도 그 근원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곱씹으며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의 그 근원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바로 나라가 위난에 처했을 때 구국운동을 하셨던 선열과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쳐 희생하신 호국영령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싸우다 순국하신 선열과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고 공훈을 기려 감사하고 보답하는 달이다.

  호국 보훈의 달 그 첫째 날인 6월 1은 국가 기념일인 의병의 날이다.

 그런데 이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의병은 국가의 명을 기다리지 않고 백성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적과 싸운 민간군을 말한다.

  이는 국가에 외적이 침입했을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백성들 스스로가 조직하고 결성해서 투쟁을 한 것이며, 우리의 국토와 죄 없는 백성들을 짓밟는 침입자에 굴하지 않고 동족을 구하고 스스로 자기 고장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우리 민족이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죽기를 결심하고 자발적으로 전투에 임했음은 역사 속 기록에서 알 수 있다. 유사 이래 외침이 많았던 우리나라. 의병의 기록은 삼국 시대의 수·당 전쟁의 안시성 전투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로부터 고려의 대몽골항쟁, 조선시대의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그리고 조선 말기의 대일 항쟁기의 항일의병활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의병이 있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의병이 가장 활발했던 전라도의 활약상은 다음과 같다.

  임진왜란 중에 우리 지역에서는 ‘웅치전투’를 비롯한 전주성 방어에 큰 성과를 거두어 일본군의 진입을 억제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전투에서 적을 막고 있는 다른 전투부대를 지원하고 응원하는 일도 많았다.

  전쟁이 끝난 후 권율 장군은 호남의 의병들이 다른 지역에 식량지원과 물자보급, 전투인력지원 등을 지원하여 주어 군대가 굶어 죽지 않고 싸울 수 있었다고 보고하며 포상을 상신하기도 하였다.

 ‘약무호남 시무국가’

  임진왜란 중에 이순신 장군이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에서 호남은 국가의 보장이니 만약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湖南國家之保障 若無湖南是無國家)’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말은 임진왜란 극복 과정에서 호남이 보여준 결정적 역할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호남의 역할이 가능하였던 것은 호남이 지켜졌기 때문이었고, 호남이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은 풍부한 물자와 민병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진왜란에서의 활약과 달리 조선말엽 대일 항쟁기 초기에 호남지역은 동학농민혁명으로 탄압과 강압을 받아 수많은 희생을 치렀던 만큼 위축되어 의병활동이 미약했다.

  하지만 중기 의병항쟁에서 호남지역은 을사늑약 체결에 반발하였던 면암 최익현 선생과 임병찬 의병장을 중심으로 1906년 4월 태인(정읍) 무성서원에서 대규모 의병인 을사의병을 일으켜 의병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태인(정읍)에서 봉기하였으나 민족을 위한 의병이 같은 민족인 진위대와 싸울 수 없다하여 순창에서 자진 해산하였고, 최익현은 관군에 체포되고 말았다. 압송된 최익현은 유배지에서 단식으로 순사하여 국민들에게 경각심을 크게 불러 일으켰고, 의병전쟁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를 기리는 날이 태인 의병의 날(6월4일)이다.

  이후 해산된 군인이 합세하여 의병이 전국 각지에서 격렬해졌던 후기 호남지역 의병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를 아울러 삼남 지역을 활동 무대로 하여 전투를 치렀다. 이석용 의병장, 전해산 의병장, 강무경, 김동신, 박춘실, 양윤숙, 양한규, 최상홍등 수많은 의병활동이 두드러졌다.

  초기 의병활동이 전국 규모 대비 약 25% 이었던 호남지역의 의병은 세월이 가면서 더욱더 진보하고 활발해져 후기에는 전국 규모대비 45%에 육박하는 등 전국 의병 활동 중에서도 최고의 활동 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남한대토벌작전으로 호남의병의 16,700명이 사살되고 36,700명이 부상을 당하면서 국내에서의 의병은 거의 소멸해 버렸다.

  이후 의병은 전환기를 맞이하여 만주와 연해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투쟁을 계속하게 되었고, 의병항쟁의 성격은 독립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호남에서는 1914년에 옥구(沃溝)의 임병찬(林炳瓚)이 고종황제의 밀지를 받아 유림 의병을 광범하게 규합해서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를 결성하기도 했다.

  이렇듯 평소에는 유유자적 자유롭게 생활하다가도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는 스스로 들고 일어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었던 전라도 지역 의병들의 숭고한 정신은 내 나라와 내 민족을 지켜내고자 함이었고, 나아가 억압과 탄압을 배제하고 자유와 평등세상을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열망이었다.

  이는 현재를 평화롭게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에서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 근원에는 의병들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덧붙여 6월1일 의병의 날. 6월6일 현충일. 6월15일 연평해전. 6.25전쟁 기념일. 6월29일 제2연평해전일 등의 날을 잊지 않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해 감사하고 추모하고 보답하는 뜻 깊은 날들이 되기를 바란다.

 이강안  광복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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